▷래플은 MZ세대(1980년 이후 출생)와 코로나19가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 소비 행태다. 2015년 무렵부터 럭셔리 브랜드와 스트리트 브랜드가 한정판을 내놓기 시작할 때엔 선착순 판매 방식이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H&M이 프랑스 발맹과 협업했을 때에는 서울 명동에서 엿새간 노숙 구매 행렬이 이어졌다. 미국 슈프림이 한정판을 낼 때마다 뉴욕과 파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워지자 MZ세대는 쇼핑의 공간을 비대면 채널로 옮겨왔다. 업계는 ‘공정’을 목숨만큼 중시하는 이들을 위해 래플을 제시했다.
▷래플은 리셀(resell)로 불리는 되팔기와 한 짝이다. 한정판 제품은 공급은 적은데 수요가 많기 때문에 중고여도 시간이 지나도 가격이 오른다. 특히 MZ세대가 매달리는 건 한정판 운동화다. 부동산과 예술품에 비하면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데다 신고 즐기다가 현금화할 수 있어 대체자산의 성격을 띤다. 이 때문에 경매회사들까지 뛰어들며 달아오른 글로벌 운동화 재판매 시장은 2025년엔 60억 달러(약 6조8000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래플 시장의 성장에는 국산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 큰 역할을 했다. 펭수 한정판 상의도, 코로나 방역 마스크도 래플을 했다. 언택트 소비자들에게 제품 스펙에 대해 상세하게 알리고, 소비를 게임하듯 즐기는 재미를 일깨우고, 공정한 소비의 규칙을 제시했더니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폭풍 신장 중이다. 결국은 공정과 신뢰의 문제다. MZ세대가 원하는 것을 알고 싶다면 래플을 연구하면 된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