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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갑질’보다 민주적 규율로[Monday DBR]

입력 | 2021-03-01 03:00:00


직장 내 괴롭힘은 근래 우리나라 기업들에 뜨거운 화두다.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줬고, 2019년 1월 15일 근로기준법(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개정되고 같은 해 7월 16일 시행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는 공식적으로 법률에 규정됐다.

그러나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게 흘렀지만 소위 ‘갑’과 ‘을’ 모두 불만이 적지 않다. 오히려 개정 법률 때문에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겼다는 기업도 있다. 왜 그럴까.

을의 처지에 서 있는 사람들은 주로 이 법이 괴롭힘을 줄여주는 효과가 크지 않다고 비판한다.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법학회가 개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1주년 토론회’에서는 주요 산업 노동자 1000명 중 71.8%가 직장 내 괴롭힘에 변화가 ‘없다’고 응답했으며, ‘감소’ 또는 ‘매우 감소’라고 답한 사람은 각각 13.0%와 6.8%에 불과하단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 아직은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주로 갑의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개정 근로기준법으로 ‘을질’이 생겨나고 있다고 불평한다. 즉, ‘을’에 해당하는 하위직 직원들이 법을 지렛대로 삼아 정당한 업무 지시나 조언까지도 괴롭힘이라고 신고해 사내 분위기를 망친다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근로기준법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눠서 보면 ①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②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을 것 ③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 등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첫째 요소와 셋째 요소는 비교적 판단이 쉽다. 그러나 둘째 요소인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행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고용부에서는 사회 통념에 비추어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필요성은 인정되더라도 행위 양태가 상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복적으로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거나 집단 따돌림을 하는 것은 업무 필요성이 없어 괴롭힘이라는 것이다.

고용부의 설명에도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남아 있다. 부하 직원이 오전 9시 1분에 출근했을 때 일찍 좀 다니라고 야단치거나, 중요한 업무를 그르쳤을 때 다른 직원들이 보는 데서 질책한 경우는 어떨까. 신입사원에게 복사 등의 업무를 주로 시키는 행위는…. 직원들에게 신입사원 환영 회식 참여를 권하는 것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각 기업은 우선 사내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규범을 명확히 해야 한다. 모 병원은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금지 행위를 열거하고 있다. 반대로 ‘을질’을 막기 위한 사내 규범도 필요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 ‘배달의 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사내 규범에는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라는 조항이 있다. 작고 사소한 규율을 통해 직장인 스스로의 원칙과 규칙을 세워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기업 내에 일과 사람에 대한 상호 존중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상사는 업무와 관련된 정당한 지시를 하고, 부하 직원은 그런 지시를 수용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또한 상사는 업무상 지시와 질책을 하더라도 늘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잃어서는 안 된다.

과거 교사들의 체벌이 훈육으로 정당화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폭력적인 훈육을 ‘인권 침해’로 새롭게 개념화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우리 기업에 횡행했던 괴롭힘 행위들이 과거에는 미화되거나 정당화됐지만 이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새로 정의됐다. 기업에서 갑과 을의 불합리한 행동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 수단을 계속 강구한다면 종국에는 전문성이 중시되는 직장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이 원고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315호에 실린 “‘갑질’ ‘을질’ 막을 사내 규범 명확히 정해야”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탁종연 법무법인 민 기업탐정센터장·범죄학 박사 crim2@lawm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