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관악산 연주대에 올라 잔설의 표면을 보니 검댕이 눈밭에 쌓여 있었다. 까만 검댕은 태양광을 흡수해 열로 전환시켜 눈을 빨리 녹인다. 즉, 검댕은 눈을 지표면에서 빨리 사라지게 하여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킨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검댕은 오래된 경유차나 석탄의 연소로 배출된다. 대기오염과 지구 온난화 문제의 밀접성을 잘 드러내는 일례라 할 수 있다.
산행을 하며 빌 게이츠가 최근 출간한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을 오디오 북으로 들었다. 성공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그리고 사업가답게 기후변화 대책 문제를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해 정량적으로 명확히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에 대한 그의 시각이 흥미로웠다. 그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원자력 발전소 관련 사고로 죽은 사람이 테라와트시(TWh) 전력 생산당 0.07명이라고 집계했다. 반면 석탄화력 발전에서 나온 대기오염물질의 영향으로 조기 사망한 사람은 TWh 전력 생산당 24.6명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안전을 이유로 원자력 발전 규모를 줄이면서 석탄화력 발전을 늘린다면 350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기대수명보다 일찍 죽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를 예측했는지 책을 마치며 게이츠는 저작의 목적이 사려 깊고 건설적인 탄소중립 사회 담론 그리고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썼다. 실제로 진보 성향이 강한 미국 참여과학자모임(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은 2018년 10월자 논평을 통해 지속적인 안전에 관한 연구를 전제로 원자력 발전의 유지를 권고한 바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볼 때 원자력 발전을 색안경을 끼고 맹목적으로 바라보는 현상은 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비정상으로 오른 정파성의 온도를 어떻게 낮출 수 있을까? 최근 미국 사회에서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언제 학교를 다시 정상적으로 열 것인가’이다. 한동안 교원 전원이 백신 접종을 받기 전까지는 교실로 돌아갈 수 없다는 몇몇 교원 노조 대표와 대면 수업을 확대하려는 교육청 사이에 줄다리기가 한창이었다. 이에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대면 수업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내면서 모든 교원의 백신 접종이 대면 수업 진행에 꼭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정확한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전문기관의 권고는 자칫 감정 대결로 번질 수 있는 사회 문제에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만든 청정 전력 생산계획을 폐기한다고 발표했을 때, 미 환경청(EPA) 과학자들은 정책평가서를 통해 청정 전력 생산계획을 폐기한다면 연간 조기 사망자가 1400명가량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을 함께 발표해 국민들에게 판단의 기준을 분명히 제시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금으로 유지되는 연구직 공무원들이 정부의 정책이 바뀔 때마다 자료를 왜곡하거나 의도적으로 누락해 그 당위성을 억지로 변호하는 경우가 관찰되곤 한다. 대학 교원과 국가 연구 인력의 정년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사회에 설명하는 임무를 그들에게 맡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 대기오염 문제의 사실 관계를 전달하고자 글을 써 오는 동안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사명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됐다.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