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정치부 차장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던 2월 4일, ‘혹시라도 부결될 가능성은 없는지’를 묻는 필자에게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무기명 투표라지만 174석 거여(巨與)가 당론처럼 추진한 탄핵안이 설마 가결정족수(151명)를 못 채우겠느냐는 자신감이었다. 실제 몇 시간 뒤 국회 본회의에선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이 현실화됐다.
2월 26일 본회의를 통과한 부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도 마찬가지였다. 가덕도 신공항은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권이 초유의 ‘속도전’으로 추진해 온 사업이다.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이어지고 있고, 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반발한다 한들 국회에서의 법 통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고백하건대 필자 역시 특별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라갔을 때부터 며칠 뒤 국회 본회의도 당연히 통과할 것이란 전제를 두고 취재했다.
구조적 한계 속에 무능력하던 야당은 더 반발할 힘도 없는 듯 무기력해졌다. 그사이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과 경제 3법 등 굵직굵직한 법들을 ‘야당 패싱’ 속에 통과시켰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법이 40년 만에 개정되는 것을 지켜본 한 재계 관계자는 “설마설마했는데 구렁이 담 넘어가듯 법이 본회의장 문턱을 넘어가더라”며 “의사봉 두들기는 ‘땅땅땅’ 소리를 듣는데 그동안 방어해 온 세월이 허무했다”고 했다. 하지만 제1야당은 이에 대해 최후의 보루인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조차 걸지 않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필리버스터도) 시간을 좀 더 버는 수단일 뿐 어차피 정해져 있는 결과가 바뀔 리 없다는 걸 알지 않냐”고 했다. 졸속으로 법안들이 통과되는 걸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자포자기하는 ‘학습된 무기력’인 것이다.
입법만이 아니다. 이 정부 들어 야당 동의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이상 고위 인사만 29명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아무리 잡음이 일더라도 민주당이 밀어붙이면 일사천리로 임명까지 이뤄졌다. 이에 맞서 야당은 “청문회를 거부하겠다”거나 “부적격 보고서를 별도로 만들겠다”고 하는 게 전부다. 우려와 비판에 민주당은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고 도리어 반발한다.
이제 한 달여 뒤면 4·7 재·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정권을 지켜내겠다”며 기세등등한 여당과 달리 야당에선 “정권을 심판하자”는 공허한 말뿐, 여전히 판세를 뒤집을 만한 ‘신박한’ 정책이나 전략은 뚜렷하게 보이는 게 거의 없다. “어차피 안 될 거야”란 패배주의 속에 다 같이 민주당이 만든 익숙함에 길들여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