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또래 대비 곧잘 하는 편이었다. 좋아해서 잘하게 된 건지, 잘해서 좋아하게 된 건지 선후관계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중요하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커서도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겠거니 했다. 취미=그림 그리기, 특기=그림 그리기, 장래희망=화가. ‘취미=특기=장래희망’의 등식이 성립하던 시절이었다. 흥미와 역량을 분리해 생각하기 어려웠던, 그것들이 너무나 매끄럽게 밥벌이로 이어질 거라 오해하던 시절.
그러나 발 디딘 세계가 넓어질수록 ‘좋아하는 것’들의 배신이 줄을 이었다. 숱한 관심과 시도들은 결국 ‘잘하는 것’이 되지 못한 채 취미의 경계에서 피고 졌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나의 취미란에 탈락 없이 머무는 것들은 주로 ‘잘함’에 대한 기준이 없거나 불필요한 것들-여행, 독서 등-이다. 혹은 잘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들, 즉 좋아하기만 하는 것들.
그러므로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것은 결코 잘하는 것과 같지 않으며, 돈 버는 것과는 더욱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좋아하는 일=잘하는 일=돈 버는 일의 등식이 성립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좋아하기보다는 그럭저럭 잘하는 일로 돈을 벌고, 못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위해 기꺼이 자원과 마음을 할애한다. 몇몇은 잘하는 일의 영역으로 옮겨올 수 있지 않을까 은밀한 욕심을 내보기도 하지만, 돈을 벌 깜냥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또한 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돈 버는 일이 반드시 같아야 할 필요도 없다. 순수한 애정에 의무가 깃들 때, 때로는 부담이 설렘을 가로막기도 한다. 각각이 역할을 나누어 분화돼 있는 존재 방식도 사실은 썩 괜찮다. 어떤 일은 생각만으로 가슴이 뛰고 시도만으로 삶을 기대하게 한다. 어떤 일은 생계와 무관한 영역에 남도록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어떤 일은, 이 모든 일이 지속될 수 있도록 일상을 지탱한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출근을 한다. 출간 원고 작업이 한창이지만 감사히도 생계와는 무관하니 마음에 여유가 있다. 이달부터는 재즈보컬을 배운다. 영 자신은 없지만, 가슴이 뛴다.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김지영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