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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춘래불사춘’과 왕소군

입력 | 2021-03-03 03:00:00


“우수 경칩에 대동강이 풀리더니 정든 님 말씀에 요 내 속 풀리누나.”

작가 미상의 우리 가사(歌辭) ‘수심가(愁心歌)’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대동강은 평양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입니다. 겨우내 꽁꽁 언 대동강도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서 봄기운에 녹아 흐른다는 의미입니다.

경칩(양력 3월 5일)은 우수와 춘분 사이에 있는 절기로 태양의 황경(黃經)이 345도일 때를 이릅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뜻의 경칩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며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날 연인끼리 은행 열매를 선물로 주고받았다고 해서 ‘연인의 날’이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1000년을 사는 은행나무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누는 의미라고 합니다.

경칩을 코앞에 두고 남쪽 지방에서는 산수유와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사람들 마음속에는 봄이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겠지요. 작년 이맘때만 해도 코로나19 상황이 이렇게 길어질 것으로 생각지 못했습니다. 더운 여름이 되면 나아지리라 막연히 기대했죠. 마스크를 쓰고 위축된 생활을 해 보니, 그간 당연시했던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서 봄을 두 번이나 빼앗았습니다. ‘춘래불사춘’을 절감합니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동방규(東方叫)의 시 ‘소군원(昭君怨)’에 나오는 말로, 척박한 이국땅에서 기구한 삶을 산 왕소군(王昭君·그림)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 원제(元帝)의 후궁이었던 왕소군은 날아가는 기러기가 그녀의 미모에 넋이 나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서 ‘낙안(落雁)’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녀는 흉노와의 화친 정책에 의해 흉노의 왕 호한야선우에게 시집가 아들 하나를 얻었습니다. 나중에 호한야가 죽자 흉노의 풍습에 따라 왕위를 이은 그의 배다른 아들과 결혼해 두 딸을 낳았습니다. 시인 동방규는 오랑캐 땅에서 왕소군이 느꼈을 슬픔과 외로움을 ‘춘래불사춘’으로 노래했습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인 지 1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확진자 수가 300명대를 웃돌고 있습니다. 감염 재생산지수도 1을 넘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봄철에 외출이 늘어나는 점과 꾸준히 유입되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등의 위험요인이 있습니다. 집단면역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이런 가운데 경제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이 1년 전보다 9.5% 늘며 넉 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습니다. 하루 평균 수출액은 역대 2월 가운데 가장 많았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5% 증가한 448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1일 밝혔습니다. 경제 분야에서 불어오는 훈풍이 사회 모든 분야로 퍼져 나가길 바랍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달 26일 ‘춘래불사춘’을 언급하면서 “마스크를 벗고, 꽃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는 봄다운 봄은 잠시 마음속에 담아두실 것을 요청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왕소군이 고국의 봄을 그리워한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가 함께 누릴 희망의 봄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