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신을 맞아 항체가 생기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염려가 없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런데 코로나 백신으로 생기는 면역은 감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살균 면역(sterilizing immunity)이 아니다. 백신 접종을 하면 증상이 발현되지 않을 뿐 체내에 바이러스가 들어오는 것까지 막지는 못한다. 내 몸속 바이러스는 언제든 다른 사람에게 옮겨갈 수 있다. 다른 백신들도 마찬가지다. 2009년 미국 일부 지역에서 갑자기 볼거리가 유행한 적이 있다. 역학조사 결과 11세 소년이 영국에서 볼거리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귀국해 전파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이 소년은 홍역·볼거리·풍진(MMR) 예방접종을 모두 마친 상태였지만 감염과 전파를 피하진 못했다.
▷백신은 몸속에 들어오는 바이러스 양을 줄여 확산을 막는 효과는 있다. 현재 백신별 전파 억지 효과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인데,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경우 1회 접종 후 감염자 수가 67% 줄었다는 연구가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미국 화이자 백신의 효과가 확인됐다. 백신을 맞지 않은 집단의 감염률은 4%인데 백신을 2회 모두 맞은 집단의 감염률은 0.02%로 뚝 떨어졌다.
▷정부는 올 9월까지 국민 70% 이상의 접종을 완료해 11월 집단 면역을 달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 나흘째인 1일까지 접종률은 0.04%에 불과하다. 집단 면역에 필요한 접종률 60∼72%는 백신이 바이러스 전파를 완벽히 차단할 경우의 수치이며 실제로는 80∼90%가 맞아야 안심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어제 “코로나가 올해 끝난다는 건 비현실적인 생각”이라며 거리 두기 강화를 권고했다. 백신 접종 개시는 코로나 끝의 시작일 뿐 끝이 아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