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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5년 된 북한인권법, 있으나마나

입력 | 2021-03-03 03:00:00

與,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 안해
5년째 출범 지연… 통일부는 뒷짐
北인권자문위, 2019년 이후 스톱… 국제협력대사도 4년째 임명 안해
野 “사실상 사문화… 국제적 망신”




북한인권법이 3일로 제정 5년을 맞지만 북한인권재단 출범과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임명 등 법에 규정한 주요 내용이 전혀 이행되지 못한 채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힘은 2일 “북한인권법이 방치되면서 국제 인권전문가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소식통은 이날 “북한인권법에 근거한 북한인권재단은 출범에 필요한 이사 추천이 안 이뤄져 5년째 출범을 못 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6년 3월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북한 인권 실태 조사와 인권 증진 연구, 정책 개발을 위한 북한인권재단 설립 조항이 담겼지만 이사회 구성조차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여야 교섭단체가 각각 5명, 통일부가 2명의 이사를 추천해 총 12명의 이사가 이사회를 구성해야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이사 추천에 나서고 있지 않아 진전이 없는 상태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4일 이사 5명을 추천한 바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린 북한인권법 제정 5주년 세미나에서 “민주당은 북한인권법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북한인권재단의 이사 추천을 미루고 통일부는 예산 절감 등을 이유로 재단 사무실을 폐쇄했다”고 했다. 그는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반도에 평화와 안보는 결코 오지 않는다’고 한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위원장의 경고도 언급했다.

북한 인권 관련 정책 자문을 위한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도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1월 구성된 1기가 2019년 1월 활동 임기를 마친 뒤 2기 구성이 안 되고 있다. 2년 넘게 국회 여야 교섭단체가 5명씩 자문위원을 추천하는 과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 1기 자문위원이었던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소장은 “1년에 한두 차례 형식적인 회의를 하는 데 그쳤다”며 “법 취지는 정부와 민간, 국제사회와 함께 협력해 북한 인권 개선을 적극 추진하라는 것이지만 오히려 민간을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6년 9월 북한인권법에 따라 신설된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도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이정훈 초대 대사가 2017년 9월 임기를 마친 뒤 공석 상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외교부가 3년 반 넘게 새 인권대사 임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을 상대로 북한 인권 실태를 조사하는 북한인권기록센터도 2016년 9월 설립됐지만 2017년∼2019년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인권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우리 스스로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좁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인권법은 한반도 평화, 남북관계 발전, 북한주민 인권 증진 및 보호가 균형 있게 진전되는 방향으로 이행돼야 한다”며 “북한인권재단 출범 등 이행되지 못한 부분도 법 취지에 맞게 이행될 수 있도록 국회 등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