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복잡해지는 주택청약
《새집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주택청약제도는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 집값이 급격히 오르고 주택자금 대출은 여의치 않으니 사람들은 더 청약에 매달리는 상황이다. 청약통장 가입자는 올해 1월 말 2730만 명을 넘었다. ‘인생 최대의 쇼핑’인 생애 최초 주택 마련에는 7년 안팎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도 걸린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청약통장을 만들고, 땀 흘려 오랫동안 일하며 자금을 마련한다. 하지만 막상 청약을 하려고 보면 청약 조건은 이전과 달라져 있기 일쑤다.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니 불편하고 불안하다. 유주택자가 되려면 움직이는 과녁 정도는 맞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
10명 중 1명은 부적격자로 탈락
청약은 조건이 복잡해져 지뢰밭 수준이다. 가령 지난달 19일 시행된 주택법 시행령을 모른 채 청약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2월 19일 이후 입주자모집공고를 낸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반드시 입주를 해야 하고 2∼5년을 의무적으로 살아야 한다.
새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고 그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르지 못한다는 의미다. 새 아파트의 잔금이 부족할 때 일정 기간 전세를 주고 그사이 돈을 모아 입주하는 기회를 막은 것이다. 자금 부족으로 계약을 하지 못하면 청약통장은 무효가 되고 당첨일로부터 10년간 투기과열지구 등의 주택에 청약할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된다. ‘남은 무주택자’에게는 더 혹독한 자금 조달 조건이 부과된 셈이다.
청약제도는 국토교통부의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으로 주로 실현된다. 이 규칙은 1978년 5월 처음 나와 지난달까지 시행 횟수 기준으로 148번 고쳐져 시행됐다. 1년에 3.4회꼴이다. 1순위 자격은 툭하면 변경됐고, 바뀔 때마다 금지 규정이 신설되거나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5월 이후로는 4년이 채 안 되는 동안 20번 새로 시행됐다.
청약제도의 잦은 변경은 청약 혼선과 함께 부적격자 양산이라는 문제를 낳는다. 내 집 마련의 꿈이 어그러지고, 투기과열지구 등에서 1년간 청약이 제한되는 불이익도 받는다. 2017∼2019년 매년 청약 당첨자의 11%가량, 즉 10명 중 1명꼴로 부적격자 판정을 받았다. 경쟁이 치열한 곳은 20%를 넘기도 한다. 지난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세대 갈등까지 부른 청약제도
청약제도는 세대 갈등까지 야기한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에서 30대 이하가 차지한 비중은 37.3%로 10명 중 4명꼴이다. 청약 시장에서 밀린 청년층이 대거 주택 매입에 나선 결과다.
정부는 2017년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하는 전용면적 85m² 이하 물량은 가점제로만 당첨자를 가리도록 했다. 가점에서 불리한 청년층이 소외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신혼부부 특별공급의 소득기준을 완화하고, 민간분양에도 생애최초 특별공급 등을 도입하며 달랬다. 이렇게 조건을 바꾸자 청약 대상이 줄게 된 장년층의 불만이 커졌다. 서울시가 작년 8·4대책에서 지분적립형 주택의 100% 추첨제를 발표했을 때도 20년 이상 청약통장에 돈을 넣으며 기다린 50대 이상 무주택자들은 반발했다. 한정된 물량을 일반공급(가점제)과 특별공급으로 가르니 제도가 바뀔 때마다 어느 쪽에서건 불만이 나온다.
로또 분양 막을 채권입찰제 필요
청약제도를 둘러싼 잡음은 과도한 차익이 근본 원인이다. 당첨되면 많게는 10억 원의 이득이 생기니 청약자들은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된 지난해 7월 말을 기점으로 수도권 분양 아파트 1순위 경쟁률에서 세 자리 경쟁률이 속출했다. 당장 집이 필요 없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심리가 팽배하다. 실수요자 내 집 마련은 멀어지고 언젠가는 당첨될 거라는 희망고문만 늘어난다.
과도한 시세 차익을 줄이려면 분양가 상한제를 없애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채권입찰제가 현실적 해법이다. 당첨자가 독차지하던 시세 차익을 공공채권으로 흡수하면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적 수요를 막을 수 있고 공공채권을 주택 건립 재원으로 활용하면 주택 공급에도 도움이 된다. 예전에는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분양가를 통제하면 채권입찰제는 바늘과 실처럼 같이 갔다. 1990년대 초반 1기 신도시 분양 때 그랬고 참여정부가 판교신도시를 분양할 때도 그랬다. 로또 분양을 그대로 두고 대출 규제를 옥죄면 부모의 도움을 받는 금수저만 웃는 불공정 논란도 계속된다.
한국 가계 자산의 80%가량이 집이다. 새집 배분 방식을 담은 청약제도는 사실상 자산을 배분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더 공정하고 알기 쉬운 청약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1인 가구가 전체 30%… 가점제 손봐야
청약제도는 2007년 청약가점제도가 도입되면서 더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가점은 부양가족 수(35점)와 무주택 기간(32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을 합쳐 84점이 만점이다. 항목은 3개로 많지 않지만 해외 체류 등을 감안한 무주택 기간, 양어머니의 부양가족 포함 여부 등 개인 사정을 따져가며 정확한 계산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 신혼부부, 생애최초, 다자녀 등 특별공급에 소득 기준 같은 별도 조건이 붙으면서 청약제도는 더 복잡해졌다.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별로 조건을 달리 적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점제는 결혼을 해서 자녀를 둘 이상 두고 부모를 봉양하는 가정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1인 가구가 615만 가구로 30%에 달하고 30, 40대에도 미혼인 인구가 383만 명에 이를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달라진 환경에 맞춰 가점제 배점 항목이나 점수 비중을 바꾸지 않고, 특별공급 물량을 늘리면서 제도가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며 “생애 주기에 맞춘 청약 등 큰 틀에서 단순하고 오래가는 청약제도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했다.
::채권입찰제::아파트 분양 이후의 경제적 이득을 노리고 투기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청약 때 매입할 채권액수를 적어내고 많은 순서로 당첨자를 결정하는 제도. 매입한 채권을 은행에 할인해서 팔게 되면 수분양자는 그 할인액만큼 비용을 더 지불하게 되는 셈이 된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