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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양지[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82〉

입력 | 2021-03-03 03:00:00


책을 통해 배우지 않아도 인간의 마음은 선을 향해서 움직인다. 그래서 양명학에서는 경전을 읽는 것보다 그러한 마음, 즉 양지(良知)를 자각하고 실천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김금숙 작가의 만화 ‘기다림’은 상처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양지의 꽃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한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남쪽으로 피란할 때 헤어진 북쪽의 남편과 아들을 그리워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는 딸에게 젖을 먹이다가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렸다. 전쟁이 일어난 게 70여 년 전이니 기다림에 나이가 있다면 그녀의 기다림은 일흔 살이 넘었다.

그러한 기다림과는 별개로 그녀는 북쪽에 아내를 두고 내려온 남자와 재혼했다. 남자가 좋아서라기보다 그의 네 살짜리 아들 때문에 그리 되었다. 같은 또래의 자기 아들이 엄마 없이 클 것을 생각하자, 아이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자기 아들에게도 좋은 새엄마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들은 재혼하면서, 북으로 돌아가게 되면 서로의 남편과 아내에게 돌아가기로 약속했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이 넷이나 태어났지만 그 마음은 변치 않았다. 그러나 두 동강이 난 나라에서 그들이 북으로 돌아갈 일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자식들이 서운해할 만큼 가슴으로 낳은 아들을 챙겼다. 안쓰러운 마음은 아들이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여전히 시장에 가면 아들 옷부터 고른다. 자식들에게서 용돈을 받으면 아들의 당뇨 약부터 짓는다. 자식들이 장을 봐서 갖고 오면 절반은 아들에게 갖다 준다.

이토록 너그럽고 이타적인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으니 책에서 배운 것은 분명 아니다. 배우지 않았어도 그녀의 마음에는 양명학에서 말하는 양지, 즉 윤리적 천성이 내재해 있었다. 그 양지의 꽃이 피는 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아이의 어미인 것으로 충분했다. 어미를 잃은 다른 아이에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어미가 된 이유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