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최대 도시 뉴욕은 동부에, 셋째 도시 시카고는 중서부에 있지만 시카고는 늘 ‘맏형’을 의식합니다. 프로이트의 빈 원조 학파를 계승해 발전시켰다고 자부하는 뉴욕을 베를린 학파의 계승자인 알렉산더는 이기고 싶었습니다. 일종의 대리 경쟁입니다. 알렉산더는 치료 효과와 효율을 높이려고 ‘정서 경험 교정’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합니다. 분석을 받는 사람의 어린 시절 경험에 부족하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면 분석가가 ‘아이를 다시 키우는 기분’으로 적극적으로 보완, 교정하기를 권한 겁니다.
뉴욕의 정통파 분석가들은 격분했습니다. 알렉산더의 행위를 ‘분석의 인위적 조작’으로 규정하고 분석의 본질을 파괴하는 짓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공격은 집요했습니다. 시카고 분석가들은 뉴욕 동료들이 냉정하고 뻣뻣하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며 말을 지나치게 아낀다고 생각합니다.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분석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발표된 증례를 떠올립니다. 규칙과 형식만 떠받들다가 분석의 핵심을 ‘망각’하고 있다고 염려합니다. 뉴욕 분석가들은 시카고 동료들이 피분석자를 부추겨서 분석과 거리가 있는 ‘아이처럼 달래며 키우기’에 몰두하고 있을 것을 걱정합니다. 프로이트가 쓴 논문의 예를 조목조목 들면서 분석의 틀이 흔들리면 분석이 아니라고 고개를 젓습니다.
지금 시카고와 뉴욕의 다툼에 관해 ‘정신분석 법정’이 판결을 내린다면 어떤 판결이 나올까요? 일단 ‘배심원단’의 평결은 문헌 고찰로 대신합니다. 판결은 “알렉산더가 제안한 ‘정서 경험 교정’을 정신분석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다. 분석보다는 정신치료에 어울리는 개념이다. 분석의 본질은 의도적인 개입을 통한 교정이 아니고 이해를 통한 통찰의 제공이기 때문이다. 단, 21세기 정신분석에서 갈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고 관계의 비중이 늘어난 점에 비춰 알렉산더의 제안이 오늘날 이루어졌다면 과도한 비판은 피했을 것이다.”
분석가도 너그러운 사람과 엄격한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이론적 성향에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하지만 분석의 틀과 본질을 무시하다가 피분석자와의 경계를 침범하면 큰일입니다. 분석적 관계는 멀고도 가깝고, 가깝고도 멀어야 합니다. 개입이 아닌 해석으로 끝나야 합니다. 어려서 부족했던 경험을 분석가가 보충해 주어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면 가족, 직장 생활과 같은 현실에서 같은 행위를 되풀이합니다. 예를 들어, 입양해 사랑으로 키워도 어려서 혼자 남겨졌던 경험의 상처는 결국 별도로 해결해야 합니다. 고통을 주는 갈등을 해소시켜야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의 반복을 막습니다. 분석가의 관심과 보살핌이 넘쳐도 현실 판단력을 못 키운다면 분석 효과는 불충분할 겁니다. 고통스럽다고 해서 진실을 외면하고 덮기만 한다면 분석이 아닙니다. 냉엄한 현실과 간격만 벌어져서 오히려 현실 적응에 장애가 생깁니다.
승강기에서 낯선 사람에게도 즐겁게 인사하는 시카고 사람들에게 무표정으로 내릴 때만 기다리는 뉴욕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일 겁니다. 친근함과 냉정함의 문화적 차이에 따라 분석 방식이 차이가 날까요? 분석은 만남과 대화이니 그럴 수 있을 겁니다. 비교를 위해 과장한 면이 있으니 두 도시 시민 여러분, 너그러운 양해를 바랍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