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2배로 뛰는 동안 출산율 내리막
국가소멸 시한폭탄 터지도록 둘 건가

이진영 논설위원
김대중 정부는 1998년 합계출산율 1.46에서 시작해 1.48로 끌어올렸다가 1.19로 마무리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를 신설한 후 1.26까지 갔다가 1.19로 끝났다. 이명박 정부는 저출산 대책이라며 낙태 단속을 강화해 여성계의 반발을 사면서도 3년 연속 상승으로 1.3까지 끌어올렸다가 1.19로 다음 정부에 넘겼다. 박근혜 정부는 1.24까지 갔다가 1.05로 끝났고, 문 정부 출범 후엔 0.98→0.92→0.84로 곤두박질쳤다.
저출산은 출산이 싫어서 안 하거나, 하고는 싶지만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다. 안 하겠다는 사람은 몰라도 비용 문제로 엄두를 못 내는 사람은 정책적 지원으로 얼마든지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다. 국내외 학자들이 출산율을 끌어내리는 가장 중요한 경제 변수로 지목하는 것이 주거비용이다. 주거비용은 지출 항목 중 비중이 제일 커서 다양한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선진국들의 경우 집값이 오르면 출산율은 떨어진다.
문 정부만이 출산율 반등을 못 이뤄낸 이유도 역대급 집값 탓이 클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어제 발표에 따르면 문 정부 4년간 노동자 평균 연봉이 3096만 원에서 3360만 원으로 9% 오르는 동안 30평형 아파트 값은 6억4000만 원에서 11억4000만 원으로 78% 뛰었다. 4년 전 연봉을 21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면 살 수 있었던 아파트를 지금은 34년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말 신혼부부의 평균 결혼비용은 1억5332만 원인데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이 5억6700만 원이니 신랑신부가 예물 예단 신혼여행 다 포기하고 대출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도 부모의 도움 없이는 서울 전세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정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수많은 청년들에겐 이마저도 배부른 소리다.
경실련은 “남은 임기에 집값은 더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출산을 결정할 때 고려하는 변수가 최근 3년간 아파트 가격 추이라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결혼 감소분까지 더하면 향후 출산율 하락폭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문 정부의 저출산 문제를 보도하는 외신은 ‘한반도 최대의 적은 북핵이 아니라 인구 감소’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학적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집값이 주춤하다가도 정부가 부지런히 대책을 내놓으면 귀신같이 올랐다. 국가 소멸 타이머를 멈출 자신이 없다면 다음 정부에 부담을 떠넘기는 부동산정책이라도 거둬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