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전만 해도 상황이 많이 달랐다. 1980년경 시작된 출생성비 불균형이 정점에 달했던 1990년 한국의 출생성비는 116.5명으로 자연 상태를 심하게 벗어났다. 유교문화가 남긴 남아 선호 사상의 병폐(病弊)란 비판을 받으면서도 태아 성(性)감별과 낙태를 통해 남자아이만 골라 낳은 가정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1993년 ‘셋째 아이 이상’ 출생성비는 209.7명이란 극단적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 숫자도 지난해엔 106.7명으로 정상이 됐다. 중국 인도 베트남 등 남아 선호가 강한 나라에선 여전히 출생성비가 110명이 넘는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길고, 사건·사고 사망자도 남성이 많기 때문에 의도적 남초(男超) 출산이 없는 사회는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많아지는 게 정상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자 80.3년, 여자 86.3년으로 6년 차이가 난다. 외국인을 뺀 주민등록 인구로는 한국도 2015년 6월에 이미 여성 인구가 남성을 앞질렀다. 남성 외국인의 취업이민이 많아진 영향으로 통계청 추계인구로는 2029년에 진짜 여초(女超)사회에 진입할 전망인데 출생성비 하락은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출생성비를 왜곡하던 남아 선호가 자취를 감춘 데엔 고령화에 따른 의식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령층이 많이 돌려보는 ‘어느 요양원 의사의 글’의 내용은 이렇다. “요양원 면회 온 가족의 위치를 보면 촌수(寸數)가 나온다. 침대 옆에 바싹 붙어서 챙기는 여성은 딸, 그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건 사위, 문간쯤에 서서 밖을 보는 남자는 아들이다.” 과장된 우스개지만 자녀와의 ‘정서적 교감’이 노후 생활에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인구구조를 바꿔 놓고 있을 수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