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주머니 들고 호통 치는 김정은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3월 17일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해 첫 삽을 뜨고 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김정은이 제시한 경제 분야 관련 목표 중엔 “올해 평양시에 1만 가구 살림집을 무조건 건설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지난해 김정은이 가장 야심 차게 추진했던 평양종합병원 건설도, 몇 년째 힘을 쏟았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살림집 건설 목표가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3월 17일 평양종합병원 건설 착공식을 열고 7개월 뒤인 10월 10일까지는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평양종합병원 준공식은 아직까지 열리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이 지난해 7월 공사장을 방문해 총책임자를 비롯한 간부들을 질책하고 전원 교체했음에도 7개월 만에 완공한다던 병원은 1년이 돼 가는 지금까지 언제 준공식을 할지 기약이 없다.
평양종합병원은 외형상으로는 건물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찍힌 구글어스 사진에 이미 공사에 동원했던 장비와 차량이 철수하고, 외벽 색칠과 주변 조경도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준공을 못 한다면 내부 의료 장비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채 껍데기만 건설됐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경험상 만약 병원 운영에 필요한 장비의 3분의 1만 갖췄다고 해도 준공식 행사를 벌이고, 사람들이 눈물을 좔좔 흘리면서 김정은을 찬양하는 선전이 질릴 정도로 나갔을 것이다. 그걸 못 한다는 것은 의료를 진행할 형편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평양종합병원에 의료 장비를 채우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도대체 얼마가 모자라기에 온 국민들에게 큰소리치고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지를 알면 현재 김정은의 주머니 사정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평양종합병원은 가로 550m, 세로 120m 부지에 20층으로 건설됐다. 병원은 병상 수가 중요하지만 관련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평양제1병원과 옥류병원, 평양산원이 1000병상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것보다 두 배 이상 큰 평양종합병원은 2000∼3000병상 정도 들어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적은 수는 아니다. 한국에서 최다 병상을 가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2615병상이고 고려대 구로병원, 안암병원이 각각 1100병상 정도 된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10년 전 전북에 500병상 규모의 모 대학병원을 건설할 때 의료 장비 구입은 병상당 6000만 원으로 계산해 300억 원을 책정한 계획서가 보인다. 내년 광명역 인근에 오픈할 예정인 중앙대병원은 4년 전 계획을 세울 때 700병상에 의료 장비 구입비용을 700억 원으로 계산했다. 병상당 1억 원인 셈이다.
두 사례를 평균하면 병상당 8000만 원이 나온다. 준공 시기나 의료 시설 종류 등이 달라 이 숫자가 정답이라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북한 사정을 얼추 가늠하는 잣대는 될 수 있다. 북한은 비싼 장비는 피하고 저렴한 중국산을 주로 쓰겠지만 그래도 MRI, CT 등 고가 장비는 기본 가격이 있기 때문에 절반 이하로 줄이긴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병상당 4000만 원쯤 써도 2000병상이면 800억 원이고, 3000병상이면 1200억 원 정도 계산된다. 즉 평양종합병원이 그 나름의 현대적 기준에 맞춰 의료 장비를 갖추려면 1000억 원 안팎의 자금이 든다고 볼 수 있다. 이 계산에 몇백억 원 정도는 오차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본질은 김정은이 1억 달러 미만 자금이 없어 세상에 큰소리를 친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마무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돈만 있다면 아무리 방역 때문에 국경을 폐쇄했다 하더라도 김정은이 지시한 의료 장비는 얼마든지 들여갔을 것이다.
이렇게 김정은은 자기도 주머니가 텅텅 비어 공개적으로 천명한 약속들을 지키지 못하면서 간부들을 향해 자신이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목을 내걸어야 하는 자리에 있는 간부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