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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高手들 “밥 한끼가 인생을 바꿉니다”

입력 | 2021-03-04 03:00:00

의왕 청계사 주지 성행 스님과 ‘사랑의 밥차’ 채성태 이사장
재난현장 등 누비며 ‘밥차’ 봉사… 쌀 흔쾌히 내준 스님과 의기투합
더 큰 봉사로 6년째 나눔의 인연 “코로나로 살펴야 할 곳 많아져”



‘사랑의 밥차’ 채성태 이사장(왼쪽)과 청계사 주지 성행 스님. 뒤에 보이는 와불(臥佛·누워 있는 부처)은 길이 15m, 높이 2m로 둥글둥글한 몽돌로 조성됐다. 의왕=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달 27일 찾은 경기 의왕시 청계사는 봄을 재촉하는 따사로운 햇빛이 가득했다. 곳곳의 풍경(風磬)이 차르랑차르랑 화음을 이룬다. 나눔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주지 성행 스님(58)과 ‘사랑의 밥차’ 채성태 이사장(54)을 만났다.

“스님, 쌀 좀 주세요.”

6년 전 채 이사장이 지인의 소개로 찾아간 스님에게 대뜸 건넨 말이다. 절에 가면 공양미가 많이 보였던 기억 때문이다. 수십, 수백 명분의 음식을 준비하다 보니 쌀이 항상 부족했다.

“그럽시다”며 흔쾌히 쌀을 내준 성행 스님도 평소 아쉬웠던 부분을 털어놓았다. “절 밖에도 한 끼 밥을 대접하고 싶은 노인과 장애인들이 많아요. 배고픈 분들은 주로 기름진 것을 찾는데 절 음식으로는 어렵습니다. 요리 실력과 봉사 인력, 기동력을 갖춘 밥차가 묘안이라고 생각했어요.”

봉사의 고수(高手)들은 서로 속사정을 잘 알았고 마음이 쉽게 통했다.

“스님 손이 크세요. 이쪽 사정을 아셔서 재료비를 넉넉히 주세요. 2017년 포항 대지진 현장을 비롯해 스님이 부르시면 기꺼이 출동했습니다. 스님의 봉사활동을 위한 기마병, 보급병이 된 셈이죠. 하하.”(채 이사장)

1985년 종상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성행 스님은 일찌감치 복지를 자신의 길로 정했다. 강원(講院) 교육 과정을 마친 뒤 중앙승가대에서 복지를 전공했다. 2000년 청계사 주지를 맡으면서 마음에 품고 있던 꿈들을 실천하고 있다. 청계사 인근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장애인 거주시설 ‘녹향원’을 맡아 개축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녹향원 드림 하우스’를 준공했다. 스님은 장애인주간보호시설 희망나래복지관(의왕시), 대궁어린이집(경기 안양시), 청소년수련원(경남 하동군)을 운영하며 어린이와 청소년, 장애인을 위한 봉사와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복을 메뉴로 한 식당으로 성공한 채 이사장은 2001년 누나의 요청으로 장애인들에게 전복죽을 서비스한 것을 계기로 봉사에 나섰다. 밥차의 원조 격인 ‘사랑의 밥차’를 시작해 지금도 주 1회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밥차 서비스를 하면서 재난 현장을 찾아 정이 담긴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한 끼의 식사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채 이사장의 다짐은 그의 체험과 관련이 있다. 젊은 시절 사업에 실패한 그는 나쁜 마음을 품고 바다로 갔는데, 해녀 할머니가 건네준 전복을 받아먹으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와 생에 대한 의지를 찾았다.

이들은 일단 시작하면 봉사활동은 중독성이 강하다고 했다.

“올해 20년이 됐는데 아직 안 망한 게 다행이죠. 200명의 후원회원과 공효진 김재원 씨 등 배우들의 헌신적인 봉사가 큰 힘이 됐습니다. 밥차를 시작한 뒤 사찰, 성당, 교회 등 밥차가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지 갑니다. 그래서 농담으로 저희는 모든 종교와 통하는 통교(通敎)를 믿는다고 하죠.”(채 이사장)

“출가자들의 가장 큰 의무는 수행이죠. 이를 바탕으로 포교와 복지에 나서야 합니다. 부처님도 집중 수행하는 결제(結制) 때에는 참선하고, 이 기간이 끝나면 중생을 위해 끊임없이 활동했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구제한다) 중 하화중생을 요즘 말로 바꾸면 바로 복지입니다.”(성행 스님)

과거에 비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이 늘었지만 사각지대가 아직 적지 않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채 이사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배식이 아니라 도시락 배달을 하고 있다”며 “형편이 어려워서인지 음식을 더 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성행 스님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을 것”이라며 “그래서 채 이사장과 평생 같이 갈 생각”이라며 웃었다.

의왕=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