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 해명 논란과 법원 인사 등으로 법원 안팎에 비판을 받아온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전국법원장회의에 앞서 입장문을 통해 “최근 제 불찰로 법원 가족 모두에게 실망과 걱정을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날 발언은 김 대법원장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국회의 탄핵 추진 가능성을 언급했는데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해명한 것에 대한 세 번째 사과였다. 김 대법원장은 “올해도 대법원장으로서 법원과 재판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변함없는 노력을 다하겠다”며 사퇴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화상으로 진행된 이날 법원장회의에서 김 대법원장을 향한 항의성 발언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회의에 참석했던 한 법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도 커지는 와중에 (법원 인사, 거짓 해명 등) 논란이 터졌으니 대법원장님도 (논란에 대한 해명을) 구체적으로 말해봐야 손해라고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의 입장문을 두고 법원 내부에선 최근 단행한 법원 인사에 대해 ‘원칙과 기준이 없는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는데도 이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김 대법원장은 주요 사건이 몰리는 서울중앙지법의 법원장 및 수석부장판사 등 요직에 ‘코드 인사’를 단행하고 인사 관례를 벗어나 특정 판사를 이례적으로 서울중앙지법에 잔류시켜 ‘특정 집단을 위한 인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 고위법관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인사농단’이라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고, 판사들이 법원을 부끄러워하고 있는 상황에서 뭐라도 설명하거나 제대로 사과했다면 일하는 데 힘이 났을 것”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이 재판 결과와 판사에 대한 정치권의 부당한 비판이나 압력에 맞서 사법부 독립 강조하는 메시지를 내놓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시는데 2019년부터 이어진 정치권의 ‘사법부 압박’에 대해 아무런 비판없이 오히려 판사들에게 ‘의연하게 대처하라’는 메시지만 내서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권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윤석열 검찰총장 등 관련 판결을 했던 판사를 비난했을 때 대법원장이 재판 독립을 위한 노력을 실천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판사는 “검찰의 수장은 조직과 법치를 수호하겠다고 사퇴하는데, 같은 날 같은 시각 법원의 수장은 다른 모습을 보여줘 씁쓸했다”고도 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법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젊은 판사들에게 승진 기회가 없어진 건 사실”이라며 “어느 조직에서든 열심히 일하기 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왔다”고 전했다.
박상준 기자speakup@donga.com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