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왕복 여덟 시간 거리에 떨어져 사는 엄마와는 일 년에 너덧 번쯤 만났다. 헤아려보면 365일 중 겨우 열흘 남짓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을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너무 익숙해서 무심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혼자 사는 엄마를 오래 만나지 못하게 되자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선명해졌다.
직계가족 모임이 가능해지고 엄마를 만나러 갔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었다. 손주들은 키가 자랐고 엄마는 나이 들었다. 모처럼 시끌벅적한 이틀을 보내고 헤어지는 시간, 엄마는 언제나처럼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인사와 포옹을 더디게 나누고는 차에 올라탔다. 잘 가라며 손을 흔드는 엄마. 나는 창문을 내리고 엄마의 모습을 찍었다. 전에는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치던 엄마가 말했다. “우리 언제 또 만나려나. 찍은 사진들 다 보내주렴. 조심히 가.” 자동차가 출발하고 여러 번 돌아보아도 엄마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언제 또 만나려나. 엄마의 말에 언제 또 헤어지려나 작별을 생각하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만남보다 헤어짐에 마음이 기울게 된 건 시간의 흐름을 선명히 깨닫고부터였다. 사는 동안에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과 몇 번이나 만나고 헤어질까. 애틋하고 고마웠던 헤어짐을 몇 번이나 기억하게 될까. 나는 알고 있다. 남아 있을 엄마와의 작별을 세어본다면 세어볼 수도 있을 거라는 걸. 그러려다 그만두었다. 그 대신에 엄마가 손 흔드는 사진을 가만히 보면서 그려보는 것이다. 엄마에게 마주 손 흔들던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하고.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