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나는 아파트가 미학적으로 예쁘지 않다고 보지만 요즘 겨울이 되면 아파트의 편리함이 저절로 느껴진다. 아내는 가끔 어린 시절 단독주택 생활을 이야기하곤 한다. 겨울마다 누군가 마당에 나가서 수도관이 얼지 않게 따뜻한 물을 쏟아 부었다고 했다. 그땐 처마에서 고드름이 보기 좋게 자랐고, 가끔 잘라내어 얼음과자처럼 먹을 때도 있었지만 지붕에서 떨어지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겨울마다 밤새 연탄을 태우는 바람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편한 일인지…. 아파트에서 동파의 괴로움과 고드름의 위험, 연탄 때는 방법을 모르는 세대가 자라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얼음이 조금이라도 얼기만 하면 집단 히스테리가 뒤따랐다. 옛날에는 거의 매년 운하, 수로, 저수지까지 모두 얼어붙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집에서 나와 얼음판 위에서 놀이를 했다. 집에서 만든 소박한 스케이트라도 상관없었다. 스케이트를 탈 줄 모르면 의자를 붙잡고 미끄러지듯 다니던 사람도 있고, 어린아이를 썰매에 앉혀놓고 스케이트를 타며 줄로 끄는 부모도 있었다. 나들이옷을 입고 서로 팔을 끼며 느리고 우아하게 춤추듯 스케이트를 타는 동아리까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진짜 며칠 동안 꽁꽁 얼음이 얼었다면 소위 ‘엘프스테덴토흐트’(11개 도시의 여행이라는 뜻) 장거리 스케이트 경주를 했었다. 거의 200km에 달하는 이 경주는 1997년을 마지막으로 열리지 못했다. 그 뒤 겨울 날씨가 지나치게 따뜻해 얼음이 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서 마침내 ‘엘프스테덴토흐트’가 다시 열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 코로나19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스케이트를 타거나 얼음판 위에서 자동차 운전을 시도한 사람도 있었다. 물론 얼음이 깨지는 통에 물에 콕 박힌 차가 한두 대가 아니었다.
1996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인도에서 걷기가 쉽지 않았다. 아예 인도가 없는 길도 있는가 하면, 있어도 평평하지 않고 발목이 비틀릴 정도로 울퉁불퉁했다. “까딱하면 큰일 나겠다”고 중얼거리며 걸었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은 또 많이 달라졌다. 반들반들하게 닦인 인도가 어디에나 있다. 이제 휠체어로 이동하는 사람뿐 아니라 시각장애인도 보다 쉽게 도심에 다닐 수 있다. 하지만 평평한 길은 보기엔 좋지만 물 또는 얼음이 조금만 있어도 쉽게 미끄러진다. 겨울철 인도에 눈이 내리면 순간적으로 스케이트장이 되어 버리고, 보행자는 쇼트트랙 선수가 되고 만다. 그러지 않으려면 아파트 경비원들이나 구청 공무원들이 나서서 제설제를 뿌려야 한다. 하지만 제설제가 환경오염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어 다른 방법도 연구되었으면 한다. 서울 성북구는 도로에 깔린 열선으로 폭설에도 눈이 쌓이지 않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한국의 뜨끈뜨끈한 보일러도 다른 나라에서 많이 수입하는데 이 열선도 곧 수출 품목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예전과 사뭇 다른 한국의 겨울이 이제 지나가고 봄기운이 돌고 있다. 겨울아 안녕. 드디어 봄님이 오신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