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불가능은 없다”… 반도체 성능 등 과학 난제에 도전하는 과학자들

입력 | 2021-03-05 03:00:00

‘반도체 한계 극복’ 이준희 교수팀, 집적도 1000배 향상 가능성 발견
‘난치 췌장암에 도전’ 장진영 교수팀, 암-면역세포 상호관계 규명 제시
과기부 ‘과학난제 콘퍼런스’ 개최… 3개팀 선정 연구비 90억원 지원



이준희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가 반도체 집적의 한계라는 과학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 전략과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현재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사용되는 실리콘 반도체는 소형화와 집적화의 한계에 직면했다. 1비트 수준의 정보를 저장하려면 원자 수천 개 이상이 결합한 수십∼수백 nm(1nm는 10억분의 1m) ‘스케일’의 회로 제어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자기기 크기가 작아져 반도체 회로 선폭이 10nm 이하로 줄어들면서 원자 뭉치들이 서로 간섭을 일으켜 제어하기 어렵다. 회로 선폭을 더 줄이면 정보 저장이나 처리가 아예 불가능해진다. 통상 10nm를 반도체 미세 공정의 한계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과학자들은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18개월마다 배로 증가한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이 종말을 고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연구로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반도체 층을 입체로 쌓은 3차원(3D) 반도체 연구나 실리콘이 아닌 그래핀·이황화몰리브덴 같은 2차원 물질을 활용한 반도체의 개발이 대표적이다.

이준희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7월 반도체 나노 공정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해법을 이론적으로 제시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연구팀은 원자 간 상호작용이 사라지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이는 반도체 소재의 개별 원자 하나하나에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는 이론으로 실리콘 반도체가 안고 있는 한계를 획기적으로 해결한 개념이다. 과학 난제 중 난제로 여겨지는 반도체의 한계 돌파는 승자 독식 구조인 반도체 시장을 송두리째 흔들 기술로 평가된다. 이달 3일과 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린 ‘2021년 한국 과학 난제 도전 온라인 콘퍼런스’에서는 이처럼 인류의 삶의 전환과 건강한 삶을 위한 도전적인 연구과제들이 대거 소개됐다.

○기존 반도체 패러다임 뒤집는 고집적 반도체 연구


장진영 서울대 의대 외과학교실 교수가 대표적인 난치암인 췌장암의 진단 및 치료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연구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과기부가 지난해 착수한 ‘과학난제 도전 융합연구사업’의 2차 연도 과제 발굴을 위해 열린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총 32개 연구팀의 도전적인 연구 주제가 발표됐다. 이 사업은 연구자가 발굴한 난제를 과학과 공학의 연구를 결합해 해법을 찾는 신개념 연구 프로젝트다. 지난해 2개 팀에 이어 올해는 3개 팀을 선정하는데 각 팀마다 5년간 연구비로 모두 90억 원을 지원한다.

이준희 UNIST 교수는 반도체 소재인 ‘산화하프늄’에 전기를 가할 때 원자 간 상호작용이 없어지는 현상을 이용하면 원자 4개에 1비트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지난해 7월 공개했다. 연구팀은 평범한 반도체 트랜지스터의 전극물질인 산화하프늄에 전압을 걸면 스프링처럼 강하게 작용하던 원자 간의 상호작용이 사라지는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이를 메모리반도체에 적용하면 집적도를 기존 반도체보다 1000배나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확인했다. 이 교수 연구팀은 이렇게 이론으로 확인한 사실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이번에 과학 난제 도전 융합 연구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산화하프늄 내 산소 원자 4개를 개별적으로 제어해 1비트의 정보를 저장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슈퍼컴퓨터로 분석했다. 산소 원자 4개의 길이는 0.5nm에 불과해 이론상 반도체 회로 선폭을 0.5nm까지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이 교수는 “원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없앨 수 있다는 물리학 이론을 시뮬레이션으로 처음 증명했다”며 “반도체 소재의 원자를 제어하고 시연해 원자 1개가 개별적으로 정보를 담아내는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생존율 10% 미만 난치 췌장암 진단·치료에 도전


장진영 서울대 의대 외과학교실 교수는 대표적 난치 암인 췌장암을 극복하기 위한 난제 연구 비전을 제시했다. 췌장암은 다른 암과는 달리 절반 이상은 항암 치료가 불가능하다. 5년 생존율은 10% 미만으로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도 유사한 상황이다.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양전자단층촬영(PET)으로도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장 교수는 췌장암 환자들 연구에서 실제 종양세포는 크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대신 종양 주변의 ‘암 관련 섬유아세포(CAF)’가 항암 및 면역치료가 잘 듣지 않게 하는 핵심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CAF와 관련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미진해 의과학계의 난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장 교수는 특히 수백 명의 췌장암 환자를 분석해 환자별로 종양의 생물학적 특성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 췌장암에 대한 새로운 분류 체계를 확립할 예정이다. 600개 이상의 항암 화학약물 라이브러리를 통해 특정 항암제에 CAF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진단과 치료 전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장 교수는 “국내에서만 매년 5000∼6000명이 췌장암 진단을 받고 있으며 생존율은 10% 미만으로 정체해 있다”며 “췌장암과 CAF, 면역세포의 상호 관계를 규명하고 2, 3년 내에 임상 적용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