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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님이 내 SNS 팔로, 갑질일까 아닐까…MZ세대의 생각은?

입력 | 2021-03-06 03:00:00

MZ세대의 생각은?




부장님이 회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좋아요’를 누르라고 한다. 과장님이 대형 프로젝트를 끝냈으니 저녁때 한잔만 하자고 한다. 차장님이 갑자기 내 개인 SNS를 팔로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별다른 논란이 되지 않았을 직장문화다. 그러나 지금 20, 30대 ‘MZ세대’ 직장인에게는 심각한 고민거리다. 참다못해 회사와 상사를 갑질로 신고한 후배 직장인도 많다. 최근 1년 6개월 동안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은 8267건. 저연차 직원들이 “성과급이 너무 적다”며 성토하자 대표가 직접 설명하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젊은 직장인이 생각하는 직장 갑질은 무엇이고, 기성세대와 어떻게 다르게 보는지 살펴봤다.


“회사SNS에 ‘좋아요’ 누르라는 부장님… 갑질 아닌가요?”
직장 괴롭힘 논란으로 번지는 직장내 세대갈등


서울의 한 중견기업 홍보팀 직원인 김진수(가명·30) 씨는 최근 팀장으로부터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회사 홍보에 활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회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라는 것. 개인 SNS 계정에 회사 관련 게시물을 올리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김 씨는 이런 지시들이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자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팀장은 “퇴근하고 일을 하라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다. 김 씨는 “회사 윗사람들이 개인 SNS가 업무와 분리된 개인 공간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며 “결국 내 원래 계정 외에 별도 계정을 하나 더 만들어 회사 홍보물을 올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 세대별 시각차 큰 ‘직장 괴롭힘’

올해 서른 살인 김 씨는 이른바 ‘MZ세대’에 해당된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를 아우르는 단어다.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사생활을 중시하고 공정성에 민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이들이 회사의 주력이 되면서 직장 내 갈등도 커지고 있다. 기존에는 업무상 필요한 일로 간주되던 것들을 ‘직장 내 갑질’이라고 보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런 문제가 직장 내 괴롭힘 논란으로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정보기술(IT) 기업인 카카오에서 벌어진 일이다. 카카오는 최근 인사평가 때 ‘함께 일하고 싶다’ ‘함께 일하기 싫다’ 등의 동료 평가를 내리도록 한 뒤, 평가 대상이 된 직원에게 그 결과를 전 직원 평균값과 함께 전달했다. 이에 직원 한 명이 “이 질문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며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근로감독을 요청했다. 직원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준다는 취지의 신고였다.

간부급과 MZ세대는 ‘직장 내 갑질’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가 만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직장 내 갑질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연령대별로 달랐다.

직장갑질119는 ‘수습사원은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 ‘다소 모욕적인 업무 지시도 필요하다’ ‘단합을 위한 회식이나 노래방 모임 등이 필요하다’ 등 30개 문항을 조사했다. ‘급한 일이 생기면 업무시간이 아니어도 SNS로 일을 시킬 수 있다’는 문항도 포함됐다. 조사 결과 20, 30대는 이들 문항을 ‘갑질’로 여기는 점수가 각각 71.5점과 70.5점으로 평균(69.2점)보다 높았다. 반면 40대(68.1점)와 50대(66.3점)는 평균보다 낮았다. 나이가 많은 직장인들은 상대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까지 ‘문제없다’고 판단한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MZ세대는 특히 사생활 침해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기성세대와의 견해차가 가장 크다. 직장인 이연지(가명·28) 씨는 최근 유행하는 SNS인 ‘클럽하우스’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았다가 이틀 만에 삭제했다. 계정을 만들자마자 그의 상사가 팔로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회사 상사가 본다고 생각하니 사생활이 침범당하는 기분이 들었다”며 “친구에게 어렵게 초대를 받아 아깝긴 했지만 활동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SNS상에서 여러 프로필을 사용하는 ‘멀티프로필’ 기능을 환영하는 이유도 사적인 활동을 회사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직장인 남정현(가명·31) 씨는 최근 중요한 프로젝트를 끝낸 후 저녁 회식을 하자는 부서 과장의 제안을 뿌리쳤다. 식사는 점심으로 바꿨다. 그는 “저녁시간은 퇴근 후 사적으로 보내야 하는 개인의 시간”이라며 “저녁 회식이 갑질일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일부 젊은 직장인은 “상사가 친해지기 위한 의도라고 하더라도 개인 사생활을 물어보는 건 싫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논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IT 등 기업의 규모와 성격을 가리지 않고 불거진다. 최근 MZ세대의 직장 내 갈등도 네이버, 카카오 등 상대적으로 ‘젊은 조직’으로 알려진 IT 기업의 성과급 논란을 계기로 불거졌다. 콘텐츠 기획 회사에 다니는 박희연(가명·33) 씨는 “우리 회사는 평균 연령이 낮은데도 개인생활보다 일을 중시하라는 ‘젊은 꼰대’가 적지 않다”며 “회사의 주류 문화는 여전히 개인보다 일을 중시하는 예전의 문화 그대로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 법적 해결은 한계…세대 간 소통 필수

MZ세대가 문제라고 보는 직장 내 괴롭힘은 상당수 개인 간의 갈등과 괴롭힘 사이에 위치해 있다. 그만큼 법적 해결이 어렵다는 뜻이다.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국한하고 있다. 젊은 직원들이 문제로 보는 SNS 팔로, 저녁 회식 등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실제 고용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부터 올 1월까지 고용부에 접수된 진정 건수는 총 8267건에 달했다. 유형별로 ‘폭언’(3709건)이 가장 많았고 ‘부당인사’(1730건) ‘따돌림·험담’(1226건) 등의 순이었다. ‘차별’(342건)과 ‘사적 업무 지시’(170건) 등 MZ세대가 민감하게 여기는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고용부는 이 중 3222건(39.0%)을 괴롭힘이 아니거나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개선을 지도하거나 검찰에 송치한 건은 1409건(17.0%)에 그쳤다. 고용부 관계자는 “단순히 직원이 괴롭다고 해서 모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는 게 아니다”라며 “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앞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된 후 폭언·폭행과 같은 명백한 갑질은 줄었지만, 갈등과 괴롭힘의 경계에 있는 미묘한 괴롭힘 제보가 2∼3배 늘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방치했다가는 갈등이 직장 갑질로 번질 수 있는 만큼 마냥 덮어둬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세대 간의 활발한 소통이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꼽힌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조직에 무조건 충성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이나 가치에 따라 이직을 자주 하는 세대”라며 “이 세대의 감수성을 이해하고 문법에 맞춰가야 기업들도 이들과 함께 커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