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칼럼니스트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블라인드를 쓴대요”라는 이야기를 4인 이하 모임에서 들었다. 블라인드 대화방에서 데이트나 연애를 한다는 것이었다. “요즘 팀원들이 그렇게 만나는 것 같더라고요. ‘오늘 합정역 7시 저녁 먹을 남자 2명’이라고 하면 바로 쪽지가 온대요.” 지난주에 서울 용산구의 중국집에서 만난 20대 후반 여성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커리어 고민으로 게시판을 보다가 어떤 분과 댓글을 주고받다 이야기를 나눴어요. 연애까지는 아니지만 실제로 몇 번 보기는 했어요. 주변에 블라인드에서 만나 소개팅을 했다는 사람도 있었고요.”
데이트 플랫폼 바깥의 데이트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난다. ‘왓챠피디아’라는 앱이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에 점수를 매기고 짧은 평을 달 수 있는 서비스다. 개인 회원이 평가한 영화 목록과 평이 쌓일수록 취향이 드러난다. 그걸로 사람의 수준을 가늠해 데이트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 제공 업체 내부에서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이야기라고 한다.
검증 도구가 없는 플랫폼에서는 개별 소비자가 서로를 검증해야 한다. 상호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는 돌아가기 힘든 방식이다. 이 때문에 앱을 통해 드러나는 직장과 취향으로 서로를 검증하는 셈이다. 그 결과 현대 한국에서는 직장인 앱에서 데이트를 하고 영화 추천 앱에서도 데이트를 하는데 글로벌 데이트 플랫폼에서는 자사의 주 기능인 데이트를 내세우지 않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 틴더는 ‘친구를 발견하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카피를 쓴다.
세상을 구경하다 보면 인간 본능은 그대로고 본능을 충족시키는 기술만 발전하나 싶다. 직장과 취향으로 자신을 검증한다는 건 별로 젊은이 같지 않지만 오늘날 수도권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엄연히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지인은 사랑의 장외시장 현상을 두고 “유교의 나라에서 데이트를 데이트라고 말하기 쑥스러운 거 아니겠냐”라는 말도 했다.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유교의 영향력은 실로 길고도 막강한 것 같다.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