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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어려운 화장품 용기 재질 바꿔주세요”

입력 | 2021-03-09 03:00:00

[이제는 Green Action!]24일부터 재활용 등급제 시행
혼합 용기 많은 화장품 업계… “당장 도입 어려워 적용 연기”
환경단체 ‘화장품 어택’ 운동
시민과 모은 폐용기 쌓아두고… 업계의 재질 개선 노력 촉구




지난달 25일 환경단체들이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한 ‘화장품 어택’ 기자회견. 2주 동안 시민들이 보낸 화장품 빈 용기를 쌓아둔 이들은 “재활용이 어려운 화장품 용기의 재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이예은 씨(23)는 자칭 ‘친환경 실천러(친환경 활동을 실천하는 사람)’다. 이 씨는 항상 손수건과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는 일회용 수저를 받지 않는다. 쓰레기 없는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자주 찾고, 거기서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실리콘 빨대와 주머니를 구매해 사용한다.

이 씨는 지난달 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장품 어택(Attack·공격)! 다 쓴 화장품 용기를 보내주세요!’라는 요청 글을 봤다. 빈 화장품 용기를 모아 환경단체로 보내주면 화장품 회사에 제대로 재활용되는 용기를 만들 것을 요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읽은 뒤 이 씨는 친구들에게 연락해 다 쓴 화장품 빈 병 12개를 모아 서울 성북구 녹색연합 사무실로 보냈다.

○‘재활용 어려움’ 표기 유예가 발단

환경부는 2018년 자원재활용법을 개정해 화장품과 음료수, 술 등의 용기 재활용 난이도에 따라 용기 겉면에 ‘재활용 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 등급을 표시하도록 했다.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의 개선을 촉구하고, 소비자가 재활용 정도에 따라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해당 개정안은 24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화장품 업계는 대부분 이번 자원재활용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상당수 업체가 환경부에 ‘적용 연기’ 신청을 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화장품 용기는 성분과 기능에 따라 유리와 플라스틱, 도자기, 금속, 고무 등 다양한 재질을 혼합해 만든 것이 많다. 이런 용기는 재질 분리가 어렵다. 바뀌는 자원재활용법에 따르면 대부분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화장품 업계는 그동안 “단기간에 용기를 단순하게 만들기 어렵고, 디자인이 매출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재활용 어려움’을 겉면에 표기하면 소비자 인식이 나빠진다”며 화장품의 자원재활용법 예외 적용을 주장해 왔다. 또 업계는 “기술 개발 후 테스트 기간까지 고려하면 법안 시행 2년이 너무 짧다”며 제도 도입의 어려움을 밝혀 왔다.

이런 상황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녹색연합과 여성환경연대 등 환경단체들이 “화장품 용기의 재질 개선이 시급하다”며 ‘행동’에 나선 것이다.

○소비자가 모은 화장품 용기 370kg

‘화장품 어택’ 게시가 올라오자 전국에서 시민들이 나섰다. 지난달 5∼21일 녹색연합 사무실에 모인 화장품 용기는 8000여 개, 무게는 370kg에 달했다.

이 화장품 용기 중 일부는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의 ‘화장품 어택’ 기자회견장 앞으로 옮겨졌다. 행동에 나선 환경단체 관계자와 소비자들은 “재활용 안 되는 화장품 용기를 회사가 책임지라”고 외쳤다.

이들은 △화장품 용기 재질 개선 △실효성 있는 공병 회수 체계 구축 △지속가능한 리필 재사용 체계 구축 등을 화장품 업계에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나선 제로 웨이스트 가게 ‘알맹’의 양래교 공동대표는 “우리 가게에서 두 달 동안 화장품 내용물을 리필해 판매한 양이 약 400L에 이르는데, 이는 플라스픽 100mL짜리 용기 약 4000개를 줄인 양”이라며 “화장품 업계가 나서서 리필 문화를 활성화한다면 더 큰 변화와 플라스틱 저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친환경 행동 나서는 시민들
이번 화장품 어택과 비슷하게 친환경 실천을 위해 직접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친환경 실천을 넘어, 기업에 친환경 제품 생산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소비자 환경단체 ‘쓰담쓰담’은 “스팸 뚜껑을 반납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통조림 햄인 스팸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뚜껑이 불필요한 물건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자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추석 플라스틱 뚜껑이 없는 제품으로 구성한 스팸 선물세트를 내놓았다.

매일유업은 올 초 빨대가 없는 멸균 우유팩 제품을 출시했다. 이 역시 사전에 “빨대를 없애 달라”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환경단체 등이 우유에 부착된 일회용 빨대 수백 개를 모아 매일유업에 보냈다. 이후 매일유업은 “빨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포장재를 연구 중”이라는 답신을 보냈고, 실제 제품 출시까지 이어졌다.

허승은 녹색연합 활동가는 “최근 환경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민이 늘어나는 것을 현장에서도 체감하고 있다”며 “사라진 스팸 뚜껑과 우유 빨대 등의 변화를 보며 시민들이 ‘뭉치면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