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동 춤의 세계’ 20, 21일 공연 9세부터 80세까지 평생 지킨 춤판… 지금도 소품-의상 직접 챙기며 준비 “신작 독무 영가, 내 인생 춤 될 것” 제자들과 대표작 ‘한량무’도 선봬
조흥동이 선보일 신작 ‘영가’의 한 장면. 작은 사진은 ‘한량무’. 공연기획MCT 제공
박자가 뭔지 알기 전부터 몸이 먼저 움직였고, 가락이 뭔지 알기 전부터 흥을 타기 시작했다. 1949년 동네 어귀에서 어르신이 틀어놓은 유성기의 민요에 맞춰 몸을 움직이던 아홉 살 꼬마. “뭘 하는지도 몰랐지만 잘한다니까 계속 춤만 추고 싶었다”던 그 꼬마는 무용 ‘초립동’을 시작으로 지금껏 평생 한국 춤판을 지켰다.
여든이 된 지금도 춤을 처음 배울 때처럼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무대에 오르는 명무(名舞). 월륜(月輪) 조흥동이 20, 21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서 ‘조흥동 춤의 세계’ 공연을 펼친다. 신작 ‘영가’와 안무작 ‘남성 태평무’를 선보인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한량무’도 만날 수 있다. 그의 춤 인생 80년을 기념하는 해라 의미가 깊다. 그의 제자 무용수 30여 명이 함께한다.
최근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월륜 조흥동 춤 전수관에서 만난 그는 공연의 세부 사항을 적어가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대를 그려내고 있었다. 주변에선 “그 연세에 어떻게 소품, 음악, 의상을 다 보시느냐”며 걱정도 한다. 하지만 몸과 정신이 흐트러지는 순간 춤도 끝난다는 철학 때문에 손수 점검하는 건 일상이다. 그는 “아무리 좋은 쇠도 며칠 놔두면 녹이 생긴다”며 “일주일만 몸을 안 움직여도 중심이 잘 안 잡히고, 정신도 마찬가지다. 치매가 오면 춤도 끝”이라며 웃었다.
이번에 독무로 선보이는 ‘영가’는 느낌이 좀 다르다. 그는 “내 이야기이자 한풀이”라고 했다. 몇 해 전 아내를 떠나보낸 상실감과 인생의 허무함을 담았다. 그는 “내 육신을 통해 지내는 천도재다. 먼저 떠난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인생무상을 절규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흰 도포를 입고 한삼(汗衫), 지전(紙錢)을 소품으로 한 서린 춤사위를 선보인다. 그는 “나의 인생 춤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성 태평무’는 남성 무용수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제1호 이수자로서 새롭게 안무를 짠 작품. 왕비와 여성의 춤이던 태평무에 남성적 위엄을 담았다. 주로 활달한 동작들로 구성됐다. 제자들과 함께 ‘원류한량무’ ‘신노심불노(身老心不老)’ ‘산조춤’ 등의 래퍼토리도 선보인다.
위로 누나만 넷인 그는 경기 이천 천석꾼 집안의 귀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오래만 살라”는 부모의 바람대로 하고픈 걸 하며 자랐다. 다만 무용만은 예외였다. “학원에 여학생만 30, 40명 있을 정도로 무용은 여성의 것”이었기에 집안을 설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서울에서 중고교에 진학한 뒤에도 몰래 무용을 배웠다. 결국 들통이 난 날에는 “누님한테 호되게 맞았다”고 했다.
그는 송범 김천흥 한영숙 이매방 장홍심 등 당대 이름난 스승들은 모두 찾아다니며 춤을 배웠다. ‘조흥동’ 자체가 브랜드가 되자 국립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 등을 지냈다. 한국 무용, 특히 남성 무용의 기틀을 잡았다. 2018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긴 세월 많은 춤이 그를 거쳐 갔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게 딱 하나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