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에 대한 오해와 진실
정유석 교수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담배로 옮겨갈 기회가 차단되면 흡연의 독과점이 고착화된다고 말한다. 정유석 교수 제공
지난해 국내 담배 판매량은 35억9000만 갑으로 2019년보다 1억4000만 갑 늘었다. 2015년 정부가 담뱃값을 올린 뒤 4년 만의 증가다. 일반 담배 판매량은 32억1000만 갑으로 전년보다 4.8% 증가했다. 반면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량은 40만 포드(pod)로 전년의 1690만 포드에 비해 97.6% 줄었다. 액상형 전자담배를 피우다 일반 담배로 회귀한 사람이 많다고 해석될 수 있다.
20년 넘게 금연 운동을 해온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57)에게는 아픈 소식이다. 정 교수는 금연 운동을 하는 의사로서는 ‘특이하게’ 액상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고 확신한다. 그 확신을 2019년 책 ‘전자담배 위기인가 기회인가’에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풀어냈다.
최근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만난 그는 “담배를 없애지 못한다면 좀 더 안전한 담배로 (흡연자들이) 건너가게 할 필요가 있다”며 “액상형 전자담배가 연초담배(일반 담배)에 비해 1∼5%의 독성만 갖고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영국 공중보건국(PHE·Public Health England)이 2015년부터 매년 펴내는 ‘영국에서의 액상형 전자담배(Vaping in England: evidence update)’ 보고서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건강에 무해하지는 않지만 일반 담배보다 적어도 95%는 덜 해롭다’고 밝힌다.
액상형 전자담배 효과에 대한 찬반이 공존하는 미국에서도 ‘개인에게는 덜 해롭다’는 연구가 나온다. 미국 과학기술의학한림원(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Medicine)은 2018년 보고서 ‘액상형 전자담배의 공중보건 결과(Public Health Consequences of E-cigarettes)’에서 ‘일반 담배를 전자담배로 완전히 교체하면 다양한 독성물질과 발암물질 노출이 줄어든다’고 했다.
정 교수는 “미국은 ‘개인에게는 덜 해롭지만 청소년과 사회에 대한 장기적인 영향은 아직 모르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담배와의 전쟁 중인데 새로운 적이 또 나타났다’는 프레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액상형 전자담배를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 금연 효과에 대한 엇갈리는 연구 결과가 매년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담배도 건강에 해롭다면서 나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건강에 미치는 잠재적 효과를 이해할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흡연자가 아닌 청소년이 전자담배를 피우면 나중에 일반 담배 흡연자가 될 확률이 2배로 늘어난다는 증거들이 나타난다고도 밝힌다.
정 교수의 임상 경험상 흡연자 100명 중 97명은 금연에 실패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그럼 이들에게 가장 해로운 일반 담배를 다시 피우라고 할 것인가’였다. ‘담배를 못 끊겠으면 덜 해로운 걸로 바꾸세요’라고 해줘야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자담배가 건강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론의 장은 국내에 아직 없다. “일반 담배는 20년 된 디젤차고 액상형 전자담배는 하이브리드 최신형입니다. 저는 빨리 하이브리드로 바꾸자고 하는데 (정부 등에서는) ‘하이브리드에서도 매연은 나오잖아’ 하는 겁니다. 이러면 토론이 될 수 없죠.”
정 교수는 “정부나 독립 기관에서 연구 결과를 정확히 발표하고 판단은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며 “저 같은 사람 이야기와 반대 목소리가 균형을 이루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