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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대부’ 룰라의 귀환… 중남미 정치지형 ‘태풍의 눈’으로

입력 | 2021-03-10 03:00:00

부패혐의 징역형 무효 판결
내년 브라질 대선 출마 길 열려… 여론조사서 지지율 50% 선두
검찰 항소 예정… 대법 심리 남아
보우소나루 대통령 “판결 뒤집히길”




중남미 ‘실용주의 좌파’의 상징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76·사진)이 3년 전 부패 혐의로 선고받은 징역 12년형에 대해 8일 무효 판결이 내려졌다. 이른바 ‘남미 트럼프’로 불린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직 대통령(66)보다 국민 지지도가 높은 룰라가 내년 브라질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중남미 정계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8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드송 파싱 브라질 연방대법관은 룰라 전 대통령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원심 판결을 내린 남부 파라나주 쿠리치바시 법원은 애당초 재판 관할권이 없었기 때문에 룰라는 수도 브라질리아의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룰라는 대통령 재임(2003∼2010년) 중 대형 건설회사로부터 계약 수주 대가로 호화 아파트를 받은 혐의로 2017년과 이듬해 열린 1, 2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사건 담당 판사가 연방검사들에게 룰라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브라질 언론의 폭로가 나오는 등 ‘판검(判檢) 담합’ 의혹이 제기됐다. 담당 판사는 2019년 보우소나루가 집권한 뒤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브라질 사법부와 재벌 언론 등 우파 기득권 카르텔이 ‘사법 쿠데타’를 통해 민주화 세력의 상징인 룰라와 그의 후계자를 몰아내고 우파 정권을 세운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유죄 판결로 2018년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2018년 4월 수감된 룰라는 페르난두 아다드 전 상파울루 시장을 대타로 대선에 내세웠지만 그해 10월 보우소나루가 승리했다. 2019년 11월 대법원은 룰라를 석방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이번 원심 무효 판결로 룰라의 피선거권이 회복돼 그가 차기 대선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맞붙을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됐다”고 했다. 룰라는 이번 판결 직전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을 정도로 브라질 국민 사이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높다. 상파울루 신문은 유력 대선 주자 후보 10명에 대한 지지율 조사에서 룰라(50%)가 보우소나루(38%)를 앞질렀다고 최근 보도했다. 중남미 좌파 정치인들은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중도좌파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룰라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무리하게 기소됐다. 정의가 실현됐다”는 성명을 냈다.

룰라는 2002년 노동자당 후보로 출마해 브라질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 됐다. 취임 뒤 강력한 재정정책으로 브라질의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잡고 경제를 안정시켰다. 이후 원자재 수출 호황 등에 힘입어 기아 퇴치와 빈곤 개선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 퇴임 당시엔 지지율이 83%에 이르렀다.

룰라의 무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브라질 검찰은 항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에서 이번 무효 판결이 뒤집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