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018년 고시원 주방에서 몸을 만지며 추행하는 남성에게 사기그릇을 휘둘러 상처를 입힌 여성 A 씨에 대해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한 것을 취소하라고 최근 결정했다. 기소유예란 혐의는 인정되나 재판에 넘기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헌재는 A 씨의 경우 정당방위이므로 무죄라고 판단했다. 또 검찰은 지난해 7월 강제로 키스하려는 남성의 혀를 3cm가량 절단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한 여성을 불기소 처분했다. “여성 입장에선 즉각적으로 유효하게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1964년 성폭행에 저항하다 가해 남성의 혀를 절단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 씨는 재심을 청구했지만 지난달 기각됐다. 재판부는 “오늘날과 같이 성별 간 평등이 우리 사회가 지향할 주요한 가치로 실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면 최 씨를 감옥에 보내지도, 가해자로 낙인찍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지만 57년이 지난 뒤에도 최 씨의 낙인을 지워주지는 못했다. 2008년 성추행하는 남성을 둔기로 때리고 목 졸라 살해한 여성이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해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한국 형법은 정당방위를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 규정한다. 대법원 판결문과 헌재의 결정문을 보면 가해 행위의 종류, 정도, 방법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고 이에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의 방어를 했는지 등을 기준으로 정당방위를 판단한다. 이런 법리를 균형감 있게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법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돼야 한다는 것은 법치주의의 대의다. 정당방위를 판단할 때도 법은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