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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꽃피는 ‘아시아계 미국인 창작자’ 그 뒤엔 OTT-다양성…

입력 | 2021-03-11 03:00:00

2, 3년 전부터 정체성 혼란 다룬 아시아계 작가들 작품들에 주목
영화-드라마 제작 흐름도 가속화… 미나리-페어웰 등 잇단 수상-호평
“다양성 지닌 작품, 좋은 성적 거둬… 관객도 주목하며 선순환구조 마련”



할리우드에서 주목받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 창작자들. 왼쪽부터 영화 ‘미나리’를 만든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 감독, ‘페어웰’의 중국계 미국인 룰루 왕 감독,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제작된 소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쓴 한국계 미국인 제니 한 작가, 애플TV플러스에서 드라마로 제작 중인 소설 ‘파친코’의 저자인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 판씨네마 오드 넷플릭스 문학사상 제공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창작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 선두에는 영화 ‘미나리’와 ‘페어웰’이 있다. 한국계 이민자 2세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는 지난해 미국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시작으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 지금까지 90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아쿼피나에게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지난해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안긴 페어웰의 룰루 왕 감독도 중국계 이민자 1.5세다. 영화는 개봉 첫 주에 4개 극장에서 평균 수익 8만8916달러를 올려 ‘어벤져스: 엔드게임’(7만6601달러)을 제쳤다.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이 쓴 책이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는 흐름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민자 1.5세인 이민진 작가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간 조선인의 처절한 삶을 그린 소설 ‘파친코’는 애플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플러스가 드라마로 만들고 있다. 이 작가의 2007년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된다. 한국계 이민자 2세 제니 한 작가가 쓴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넷플릭스 영화로 시즌3까지 나왔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이민자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녹였다는 것. 미나리는 “한국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자란 정 감독의 유년 시절을 담았다. 페어웰도 중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미국의 가치관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국계 미국인의 이야기로, 왕 감독의 경험을 토대로 했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한국계 미국인인 주인공이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뒤 인종과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미국 사회에서 느끼는 혼란을 그렸다. 미국은 이민자의 국가인 만큼 인종, 세대, 국적 간 갈등을 다룬 작품은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시아 관객들은 가족애와 같은 보편적 주제의식에 공감한다.

아시아계 미국인 창작자들이 자신의 뿌리를 다룬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2, 3년 전부터다. 중국계 미국인 여성과 싱가포르 출신 남성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쟁취하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년)은 미국에서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미국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 중 처음 아시안 여주인공을 내세운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도 인기를 끌면서 2018년 8월 아시아계 콘텐츠가 대거 출연한 현상을 두고 ‘#AsianAugust’라는 해시태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확산하기도 했다.

아시아계 미국인 이야기의 인기는 OTT의 등장으로 일시적 현상이 아닌 주류가 됐다. 글로벌 OTT들은 세계 시장을 겨냥하기에 지역 구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넷플릭스, 애플TV플러스, 디즈니플러스 등은 아시안 창작자의 이야기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강성률 영화평론가는 “콘텐츠 소비 방식은 완전히 OTT로 넘어왔다. 중요한 건 클릭 수여서 중국 인도 등 인구가 많은 아시아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도 OTT가 여러 국가의 작품을 만드는 데 불을 지폈다”고 했다.

지난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거세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할리우드는 성별과 인종을 망라한 작품의 등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 하고 있다. 아카데미를 주관하는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지난해 6월 수상 자격 기준에 다양성과 포용성을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최근 “(협회 구성원 중) 흑인과 다른 저평가된 구성원들을 늘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할리우드가 소수인종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 멕시코의 사회적 억압을 다룬 영화 ‘로마’로 멕시코 출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것도 같은 흐름이다. 다양성을 지닌 작품들이 주요 시상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관객도 주목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