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숲 풀들이 놀란 듯 흔들대자 장군은 한밤중에 활시위를 당겼지.
날 밝아 흰 화살 깃 찾아봤더니 바윗돌 모서리에 박혀 있었네.
(林暗草驚風, 將軍夜引弓. 平明尋白羽, 沒在石H中)
이광(李廣)이란 한나라 장수가 있었다. 중원 땅을 노리던 북방 흉노족이 비(飛)장군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던 용장이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기록된 일화. ‘이광이 사냥을 나갔다가 풀숲의 바위를 보고 호랑이라 여겨 활을 쏘았다. 화살이 돌에 적중하여 그 가운데 박혔다. 자세히 보니 돌이었다. 다시 한 번 쏘았더니 더 이상 바위에 박히지 않았다.’ 역사가가 담담하게 장군의 궁술과 위력을 기술한 데 비해 시인은 그 영웅적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극적 효과를 최대한 살리려 고심했다.
풀숲이 바람에 들척들척하는 장면을 ‘놀람’으로 표현했으니 장군도 독자도 섬뜩한 느낌이 더 강했으리라. 화살촉의 향방을 즉석에서 가리지 않고 다음 날 새벽에야 밝힌 것은 박진감을 더하려는 교묘한 안배로 보인다. 화살촉이 바윗돌의 중앙이 아닌 모서리에 박혔다고 한 것 또한 장군의 신묘한 궁술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장군이 시험 삼아 재차 활시위를 당긴 대목을 굳이 생략해버린 건 그 위신을 배려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사를 변용하는 시인의 은근하고 함축적인 솜씨가 그래서 더 곡진(曲盡)하다. 문학적 형상화가 어떻게 사실(史實)의 기록과 구별되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사례라 하겠다.
노륜의 ‘새하곡’은 모두 6수로 이루어진 연작시. 새(塞)란 국경 지대인 변방을 뜻한다. 이백 등 많은 시인들이 을씨년스러운 변방의 풍광, 병사의 생활이나 향수를 노래하면서 ‘새하곡’, ‘새상곡(塞上曲)’, ‘종군행(從軍行)’ 등으로 시제를 삼았는데 주제나 분위기가 서로 어슷비슷하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