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면 맞은 ‘G2 갈등’
2019년 6월 중국 본토로의 범죄인 송환이 가능한 송환법에 반발해 시위를 벌인 홍콩 시민(왼쪽)과 같은 해 3월 인도로 망명한 후 중국의 탄압을 규탄하는 티베트인들. AP 뉴시스·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캡처
집권 전부터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노선을 고수할 뜻을 여러 차례 밝혔던 바이든 행정부가 강경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대응 전술을 바꾼 이유가 뭘까.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강경노선이 실익을 거두지 못했고 △동맹 등을 끌어들이기에도 좋은 데다 △중국의 내부 반발 및 분열을 야기하는 데도 효과적 수단이라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양국 갈등을 ‘힘’의 문제에서 ‘가치’의 문제로 전환시켜 ‘자유진영 대 중국’ 구도를 만들면 과거 냉전 시기 총성 없이 제도와 규범으로 옛 소련을 붕괴시킨 것처럼 중국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속내가 담겼다는 의미다.
○ 바이든 “인권 유린 대가 치를 것”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개최된 타운홀 회의에 등장해 “중국이 인권 유린 대가를 치를 것이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그걸 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세계 리더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인권에 반하는 활동에 관여하는 한 그러기 힘들 것”이라며 “미국은 인권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미국과 중국을 대비시켰다. 미국이 세계와 경쟁을 잘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주요 경쟁자(중국)가 외국인 혐오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역시 1월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의 신장위구르 탄압을 제노사이드(인종학살)로 보느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그렇다”고 답했다. 블링컨 장관은 취임 후 카운터파트인 양제츠(楊潔지)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의 첫 통화에서 “신장위구르와 티베트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월 춘제(春節·중국의 설) 연휴기간에는 티베트 설 축제 ‘로사’를 축하하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히말라야의 언어 종교 문화유산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의 전임자인 마이크 폼페이오는 지난해 7월 시 주석을 “파탄 난 전체주의 이념의 신봉자”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리처드 닉슨 정권 이후 계속됐던 대중국 포용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재임 내내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을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한 그는 5일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인권 탄압 때문에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시진핑 “인권 가정교사 필요 없어”
정파 이념이 다른 미 지도자들이 한목소리로 중국을 규탄하는 것은 단순한 패권 다툼을 넘어 인권에 대한 인식 차이 또한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서구에서는 ‘인권은 인간의 천부적 권리이며 국가 또한 이를 제한할 수 없다’라고 인식한다. 과거 홍콩을 통치했던 영국이 중국의 인권 문제에는 미국 이상으로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서방이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을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에 버금가는 전쟁범죄로 여기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국가와 민족에 관계없이 생명·안전·건강 등에 관한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며 그 어떤 예외도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중국은 ‘인권의 개념이 나라마다 다를 수 있으며 때로 주권이 인권에 우선한다’고 여긴다. 중국처럼 소수민족이 많은 다민족 국가에서는 통치를 위해 일정 부분 중앙집권적 통제가 불가피하며 서방의 판단 기준을 모든 사안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맞선다. 지난해 9월 시 주석의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 EU 수뇌부와 화상회의를 한 시 주석은 세 지도자가 중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자 “세계 어디에도 보편적인 인권 발전 과정은 없으며 인권 보장에 대한 절대적 기준과 최선 또한 없다”고 주장했다. 시리아 내전 후 몰려온 이슬람 난민을 탄압하는 유럽 또한 인권 선진국이 아니라는 취지로 반격에 나선 셈이다.
○ 출산 통제·고문·강간 자행되는 위구르 수용소
서방과 중국이 특히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로 충돌하는 것은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 정도가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이뤄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 싱크탱크 뉴라인스연구소는 9일 인권, 전쟁범죄, 국제법 전문가 50여 명이 참여한 ‘위구르 집단학살’ 보고서를 통해 2014년 이후 최대 200만 명이 신장위구르 내 1400여 시설에 구금돼 있으며 성폭력, 고문, 문화 세뇌 등이 자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2017∼2018년 위구르족의 출산율이 33% 하락했다며 시설 내에서 인구 감소를 위한 불임 시술, 강제 낙태 등이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너무 늦기 전에 지금 행동할 의무가 있다”며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앞서 지난달 2일 영국 BBC 역시 위구르 수용소에서 무슬림 여성이 겪는 강제 수술, 투약, 조직적 강간 실태를 보도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여성 수용자가 강제로 자궁 내 피임 장치를 하고 불임 수술을 받으며 20세밖에 안 된 젊은 여성조차 예외가 아니라고 폭로했다. “한족 남성이 위구르 여성 수용자를 강간하도록 도왔다” “수용소 내 성폭행이 일상이며 전기 고문까지 자행됐다”는 수용소 전현직 관계자의 충격적인 증언도 나왔다.
중국 면적의 17.3%(167만 km²)를 차지하는 신장위구르에는 약 1200만 명의 위구르족이 산다. 이슬람교를 믿는 튀르크계 민족으로 한족과 외모 인종 언어 문화가 완전히 다르며 튀르크계 언어인 위구르어를 쓴다. 18세기 청나라가 정복하기 전에는 중국에 편입된 적이 없다. 과거 비단길의 요충지로 ‘서역’으로 불렸던 이 지역을 중국이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즉 ‘새로 얻은 영토’라고 지칭하는 것 또한 원래 중국 땅이 아니었던 지역을 편입했음을 보여준다.
위구르인은 이곳을 ‘동(東)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1933년 동투르키스탄 이슬람공화국이란 독립국을 세웠지만 몇 달 만에 옛 소련의 지원을 받은 군벌에 패망했다. 1945년에도 같은 이름의 나라를 세웠지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병합됐다. 이후 숨죽이고 지내던 위구르족은 1991년 옛 소련 붕괴 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튀르크계 5개국이 소련에서 독립하자 본격적으로 분리주의 운동에 나섰다. 2009년 자치구 내 최대도시 우루무치에서 대규모 분리독립 시위가 일어나자 중국은 무자비한 탄압에 나섰다. 중국이 주장하는 사망자는 197명이지만 비공식적 사망자가 1000여 명에 육박해 1989년 톈안먼 사태 후 중국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난 시위란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은 특히 위구르 일부 강경파가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무장단체와 결탁해 테러를 저지르자 ‘테러분자를 소탕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거센 탄압에 나섰다. 자치구 곳곳에 수용소를 만든 후 사법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채 위구르인을 몰아넣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014년 테러 후 신장위구르를 방문한 시 주석이 “추호도 자비를 베풀지 말고 대응하라”고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2016년 8월 시 주석의 최측근이며 차기 중국 최고지도자 후보군에도 올라있는 천취안궈(陳全國·66)가 신장위구르자치구 당서기로 부임했다. 부임 전 티베트에서도 초강경 탄압 정책을 편 그는 부임 1년 만에 경찰 9만 명 이상을 새로 채용하고 7300여 개의 검문소를 세웠다. 폐쇄회로(CC)TV로 위구르족을 가려낼 수 있는 최첨단 안면인식 기술까지 동원해 위구르족을 압박했다. 천 서기의 탄압 강도 또한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중국의 약점은 경제 아닌 인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이 중국의 인권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은 보편적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도 있지만 급부상하는 중국을 제어하는 효과적 장치가 인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무역전쟁은 승리하기 쉽다”고 공언했지만 그의 집권 기간 미국이 중국과의 경제전쟁에서 사실상 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3470억 달러였지만 2019년에도 3450억 달러를 기록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중국 관세 부과로 인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타격 역시 0.3%에 불과했다. 미국의 대중국 직접투자 역시 2016년 129억 달러에서 2019년 133억 달러로 오히려 증가했다. 미 피터슨연구소는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으로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2020년에만 1590억 달러의 상품을 수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940억 달러만 수입했다고 지적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을 경제적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봤지만 현실은 달랐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양국 경쟁을 ‘규범과 질서’의 대립이란 구도로 재편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장 역시 “미국이 인권은 특정 국가와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문제라는 인식을 앞세워 세계 각국을 반중 전선에 동참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 역시 이 같은 구도가 중국에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주권 침해, 내정간섭이라고 반박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에서 양국이 이 문제를 두고 거세게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 조유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