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윤 원장이 질주하고 있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 110회, 100km이상 울트라마라톤 70회를 완주했다. 이렇게 달리는 이유가 그를 찾아오는 마라톤마니아를 잘 치료하기 위해서다. 김학윤 원장 제공.
김학윤 원장은 “우리 우승 소식이 알려지면서 혼자 달리고 있던 OB(선배 의사), 달리기에 열정이 있는 YB(예비 의사 후배)가 모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해 가을 고려대 의대 마라톤(KUMA)이 만들어졌다”고 회상했다. KUMA는 국내 최초의 의과대학 마라톤 동아리다. 졸업한 뒤 현업에 뛰고 있는 OB 의사들과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YB 학생들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것이다. 대 선배인 김선기 성심정형외과 원장(63학번)이 회장을, 서승우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82학번)가 YB 지도교수를 맡았다.
KUMA는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서울뚝섬유원지에서 만나 함께 달렸다.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마라톤은 물론 의사로서의 삶, 인생 등에 대해 서로 의견도 나눴다. 매년 2월 졸업생환송회, 3월 신입생환영회 겸 동아마라톤 출전, 5월 소아암환우돕기마라톤대회 출전, 6월 근육병환우돕기달리기 출전, 7·8월 달리기심포지엄, 11월 송년회 및 시즌 마지막대회 출전 등 연간 계획까지 세우고 체계적으로 활동했다. KUMA 결성을 주도한 김학윤 원장은 “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의사들이 달려야 일반 사람들도 ‘괜찮겠구나’며 안심하고 달린다. 우리 관절은 적당한 자극을 받아야 건강하다. 그래서 가급적 많은 의사들이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고대 의대 마라톤(KUMA) YB 주장 최정호 씨(왼쪽)가 2019년 jtbc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한 뒤 포즈를 취했다. 최정호 씨 제공.
“2000년 10월 이었습니다. 의학 분업 탓에 6개월 시달리다 운동을 못해 살이 쪘어요. 일요일 북한산에 올랐는데 저보다 10년 선배가 한마디로 날라 다니더라고요. 저도 대학 때 산악부에 들어 산 좀 탔는데…. 자존심이 상했죠. 그 때 그 선배님이 마라톤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의사가 마라톤을 한다고 하니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들이 모인 사이트인 메디게이트 마라톤동호회에 가입해 점심시간에 초등학교 운동장을 30분 씩 달렸다. 2001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하프코스를 2시간 13분에 완주했다.
“그 무렵 제가 마라톤을 한다고 하니 500km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했던 한 분이 찾아왔어요. 50km까지 가서 부상 탓에 포기했다며 500km를 달릴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어요. 진찰해보니 관절의 문제는 아니고 무리해서 인대에 통증이 있는 상태였죠. 그래서 ‘연골 등 관절에는 문제가 없으니 저라면 달리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그 분이 나중에 500km를 완주했습니다.”
그게 소문이 나면서 울트라마라톤 마니아들이 김 원장을 찾기 시작했다.
고려대 의대 마라톤(KUMA) 회원들이 2017년 근육병 환우들과 함께 하는 마라톤대회를 마친 뒤 한자리에 모였다. KUMA 제공.
“울트라마라톤 100km 이상을 10회 이상 완주하니 몸이 아주 좋아지는 것을 느꼈죠. 정형외과 의사로 환자 진료 공부하기위해 달린 것인데 달리다보니 몸이 좋아지니 더 빠지게 된 겁니다.”
2012년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에 매진했다. 역시 철인3종을 하는 마니아들이 찾아와서 어떻게 진료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할 때였죠. 환자들에게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2012년 9월부터 매일 수영만 했습니다. 몸이 물에 뜨지 않아 고생했습니다. 2달이 지나서야 떴죠. 중요한 것은 떠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폼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수영하는 것을 보고 남들은 ‘어떻게 저러고 갈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겁니다. 중요한 것은 완주죠.”
고려대 의대 마라톤(KUMA) 선후배들이 모처럼 서울 한강 뚝섬유원지에 모여 투지를 불태웠다. 왼쪽부터 최정호 씨, 이선호 씨, 김학윤 김학윤정형외과의원 원장, 남혁우 남정형외과 원장, 서승우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대학 때 산악부 활동을 하며 프랑스 산악가 모리스 에르조그의 안나푸르나 첫 등정기 ‘인류 최초의 8000m 안나푸르나’를 수십 번 읽었죠. 1950년대 당시 8000m 이상은 산소가 부족해서 인간이 올라갈 수 없다고 여겼던 불가능의 상징이었죠. 그런데 그를 포함한 프랑스 등반대가 불가능에 도전해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불가능에도 도전한다를 제 삶의 모토로 삼고 8000m를 닉네임 아이디로 쓰게 됐습니다.”
김 원장은 지금까지 살면서 수영이 안 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뭐든 불가능해도 도전해 이뤘던 그로선 엄청 큰 장벽을 만났던 것이다.
“그 때 잠시 ‘하루만 더’로 닉네임을 바꿨습니다. 오늘 도 안 돼?, 하루만 더, 이런 식으로 버텼죠. 그러자 어느 날 몸이 물에 뜬 겁니다.”
김학윤 원장이 제11회 북한강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완주한 뒤 포효하고 있다. 김 원장인 이 대회 100km를 11회 연속 완주했다. 김학윤 원장 제공.
김 원장은 20년 달리며 진료하다보니 전국적으로 팬들이 많아졌다. 그는 주사도 전혀 쓰지 않고 치료한다. 그는 “내가 가급적 오래 달리며 찾아오는 환자들도 100세까지 부상 없이 오래 달리게 하는 게 평생의 꿈”이라고 했다.
KUMA OB 주장을 맡고 있는 남혁우 남정형외과 원장(50)은 수술직전에까지 갔던 목 디스크 치료를 위해 2013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운동마니아가 됐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진료를 보고 척추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골프와 아이스하키 등 비대칭적인 운동을 하다보니 목 디스크가 왔다. 선배 의사들이 달리면 좋다고 했다. 진짜 기적적으로 좋아지는 것을 느꼈고 달리기의 신비함에 매료됐다”고 했다.
“달리면 척추기립근이 좋아지고 코어 근육도 발달해요. 혈류도 좋아져 디스크 치료에 도움이 됐습니다. 논문을 찾아봤더니 이런 데이터가 많이 있었죠. 그래서 더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고려 의대 달리는 의사들’이 2015년 제주국제울트라마라톤 100km 단체전에서 우승한 뒤 시상대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양재혁 조재현 김학윤 남현우 남혁우 원장. 김학윤 원장 제공.
“달리기가 좋아 너무 집착했더니 근육과 인대 등에 경미한 부상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 때부터 마라톤 부상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철인3종도 시작했죠. 달리기가 힘들면 수영, 수영이 힘들면 사이클, 이렇게 돌아가면서 운동을 하면 부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만 할 경우 똑같은 동작을 달리다보니 근육, 인대에 무리가 갑니다. 며칠 쉬면 회복이 되는데 대부분 그걸 참지 못하고 달리면서 부상으로 이어집니다. 이럴 때 수영, 사이클 등 대체 운동을 하면 좋습니다.”
남 원장은 운동도 나눠서 한다. 아침에 수영, 점심 때 헬스클럽 웨이트트레이닝이나 러닝, 저녁 때 사이클이나 러닝, 이런 식이다. 그는 “절대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즐겁게 운동한다. 그래야 운동을 즐기며 부상도 예방할 수 있다. 10km 달리고 아프면 수영이나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다가 달리면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남 원장은 철인3종 올림픽코스는 많이 완주했고 킹코스도 완주했다. 킹코스 최고기록은 13시간10분. 2015년 제주국제울트라마라톤 100km 단체전 우승 멤버인 남 원장은 2016년에도 출전해 단체전 2위에 한몫했다.
남혁우 원장(왼쪽)이 한 마라토너와 질주하고 있다. 남 원장은 마라톤으로 시작해 철인3종까지 섭렵한 뒤 최근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에도 입문했다. 남혁우 원장 제공.
남 원장은 모 매체에 달리기에 대한 칼럼을 쓰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그의 팬들도 많다.
YB 주장을 맡고 있는 최정호 씨(24·본과 2)는 예과 2학년 때 KUMA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했다. 중고교 시절 단거리 달리기를 즐겼던 그는 2019년 11월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 5시간에 완주했다. 그는 “달리면 기분전환이 돼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확산으로 대회가 없어져 풀코스에 도전할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올해 대회가 열리면 다시 풀코스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YB 주장을 맡았던 이선호 씨(23·본과 3)는 중학교 때부터 가족과 함께 10km 단축마라톤에 출전할 정도로 달리기를 즐겼다. 예과 1학년 때부터 KUMA에 가입해 열정적으로 달리고 있다. 하프코스를 2시간 10분에 완주했지만 아직 풀코스는 완주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씨는 “예과 땐 몰랐는데 본과에 올라오면서는 체력이 좋아져 공부에 더 잘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정신력에 도움이 돼 힘겨운 의학 공부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최 씨와 이 씨는 지난해 코로나19가 퍼지며 모여서 달리는 횟수는 줄었지만 매주 3회 이상 5~10km씩을 달리고 있다. KUMA는 OB 29명, YB 28명으로 구성돼 있다. YB는 졸업할 때까지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이 목표다.
고려대 의대 마라톤(KUMA) YB 회원들이 함께 달린 뒤 포즈를 취했다. KUMA 제공.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