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B.
아삭아삭한 콩나물에 향긋한 미나리가 섞인 ‘아구찜’(표준어는 아귀찜이다)을 먹을 때면 이상하리만치 ‘멍게’를 떠올린다. 오래전 한 선배가 들려준 ‘멍게와 우렁쉥이’ 얘기 때문에 생긴 고약한 버릇이다.
멍게가 우렁쉥이의 사투리이던 시절. 어느 음식점 차림표에 멍게와 우렁쉥이가 나란히 있는 게 아닌가. 호기심이 동한 선배가 까닭을 묻자 주인은 “멍게를 찾는 손님도 있고 우렁쉥이를 찾는 손님도 있어 우리 가게엔 둘 다 있다는 뜻으로 써놓았다”라고 하더란다. 말의 뜻을 더하고 변화시키는 건 언중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는 절묘한 선택에 선배는 무릎을 쳤다고 한다.
멍게는 1988년 복수표준어가 됐다. 잘 알다시피 지금은 우렁쉥이보다 훨씬 더 자주 입말로 오르내린다.
멍게가 복수표준어가 된 지 3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구의 처지는 안쓰럽기만 하다. 사전은 ‘아귀’가 표준어이므로 ‘아구’는 절대로 써선 안 된다며 여전히 사투리로 묶어두고 있다. 과연 그럴까? 아귀찜, 아귀탕이 표준어라고 그렇게 부르짖어도 언중의 말 씀씀이는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아귀찜과 아귀탕은 음식점 차림표에서도 가물에 콩 나듯 보일 뿐이다.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아귀는 ‘쓸데없이 입만 커서 온몸이 주둥이인’ 고기다.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도 다르다. 마산은 ‘아구’, 경남 일부 지방은 ‘물꿩’, 인천은 ‘물텀벙’이다. 한자로는 안강(鮟鱇)이다. 요즘 들어 듣기 힘들어졌지만 안강망 어선은 그러니까 아귀를 잡는 배다.
소중한 낱말이 표준어 둥지 밖에서 서성이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어문 정책이 표준어를 ‘교양인’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묶어버린 까닭이다. ‘아구’의 처지가 딱 그렇다.
이젠 열에 아홉은 ‘아구찜’이라고 하는 언중의 말 씀씀이를 받아들여 ‘아구’를 복수표준어로 삼아야 한다. 표준어는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라기보다 유용함의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 어떨까. 더는 고민하지 않고 아구찜을 주문할 수 있어야 한다.
쓸데없는 고민이 또 생긴다. ‘대자일까, 대짜일까?’
어떤 물건의 크고 작음을 일컬을 땐 대 중 소에 ‘-짜’가 붙는다. 한자어 대(大), 중(中), 소(小)에 이끌려 ‘대자’라고 하기 쉽지만 대짜가 옳다. ‘어원이 분명치 않은 말은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규정 때문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