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출발, 다른 길 가는 文-차이(蔡)
‘기업은 개혁 대상’ 인식 못 버린 文
‘중국어-영어 2언어 정책’까지 거침없는 蔡
이대론 대만 발뒤꿈치 쳐다볼 날 올 수도

천광암 논설실장
하지만 최근의 대만은 ‘용의 귀환’을 선언한 듯하다. 지난해 한국 미국 일본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와중에도 대만은 2.98% 성장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9.9%나 증가해 조만간 한국을 추월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다.
국제사회의 시선도 달라졌다. 영국의 정치·경제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은 지난달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보고서에서 대만을 ‘아시아 민주주의의 등불’이라고 극찬했다. 프랑스의 주간지 르푸앵은 지난해 12월 ‘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라는 커버스토리의 표지 그래픽으로 5명의 정치지도자가 육상트랙을 도는 모습을 실었다.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차이 총통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민간’을 보는 관점이다. 차이 총통은 “정치 분야에서는 함께 힘을 모아 큰일을 이루기가 어렵지만, 민간 부문은 많은 사람의 참여를 끌어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에 비해 문 대통령은 ‘민간 기업=개혁 대상’이라는 운동권적 시각에 발목이 잡혀 있는 모습이다. 기업계가 여당에 여러 차례 읍소하면서 입법 재고를 요청한 상법 개정안 등 3법에 대해 문 대통령은 “기업을 건강하게 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며 기업계와는 극명한 시각 차이를 보인 바 있다.
민간에 대한 인식 차이가 성과 차이로 이어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해외진출 자국 기업의 유턴 정책이다. 차이잉원 정부는 2019년 초부터 금융 세제 용수 전력 인력 지원을 묶은 패키지를 만들어, 해외에 나가 있는 대만 기업들에 유턴을 제안했다. 2년여 기간 동안 209개 기업이 제안에 응했다. 총 투자금액은 31조9139억 원, 창출되는 일자리는 6만5552개에 이른다.
한국에도 유턴을 지원하는 제도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실적은 한심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이후 작년 5월까지 총 실적은 36건. 반면 2018년 한 해에만 한국 기업이 해외에 세운 신설법인 수는 3540개에 이른다. 유턴은 고사하고 한국을 떠나려는 탈출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차이 총통은 진보정당 지도자이면서도 신자유주의적 색채가 강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거침이 없다. ‘2언어 국가’ 정책이 대표적이다. 2030년까지 대만을 중국어와 영어가 모두 통하는 나라로 바꿔 놓겠다는 계획이다. 영어 장벽이 없어지면 글로벌 기업 유치가 쉬워지고, 대만 기업들의 글로벌 비즈니스도 활발해져 좋은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복안이 엿보인다.
우리 사회 내부의 성장 사다리가 하나둘씩 허물어져 내릴 때의 결과를 예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국이 1인당 소득 4만, 5만 달러대의 선진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 자체가 치워질 것이다. 이대로 가면 대만의 발뒤꿈치만 하릴없이 올려다볼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른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