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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김기용]“파오차이 대신 김치 주세요”

입력 | 2021-03-16 03:00:00

베이징 교민들 일부러 ‘김치’ 주문
‘김치’ 이름 찾도록 정부도 노력해야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해외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김치는 조금 남다르다. 단순히 먹는 음식을 떠나 가슴 뭉클하게 하는 뭔가가 있다.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서일 수도,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애국심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런저런 마음들이 뒤섞여 특히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인들에게 김치는 분명히 특별하다.

중국에 파오차이(泡菜)라는 음식이 있다. 파오차이는 원래 산초와 향신료, 중국술인 바이주(白酒) 등을 넣고 끓였다가 식힌 물에 고추와 양파 등 다양한 채소를 넣어 절인 음식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피클과 비슷하다. 그런데 중국은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부르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중국인들은 ‘김치=파오차이’이고, 파오차이 종주국은 중국이니 결국 김치 종주국도 중국이라는 논리다.

한국의 김치는 김치이고, 중국의 파오차이는 파오차이다. 두 음식이 같지 않은데 김치를 번역해 파오차이라고 쓰는 순간부터 한국과 중국의 ‘김치 갈등’은 예견된 것이다. 중국에서도 김치를 김치라고 부를 수 있게 돼 ‘김치≠파오차이’가 되면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최근 베이징 왕징(望京)의 한 한국음식점에서 만난 교민 부부는 중국인 종업원에게 여러 차례 ‘김치’를 강조했다. 밑반찬을 더 달라면서 ‘김치’라고 말했는데, 종업원은 “파오차이를 말하는 것이냐”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부부는 “이 음식은 파오차이가 아니라 김치”라면서 “앞으로는 계속 김치라고 주문하겠다”라고 설명까지 했다. 종업원은 김치와 파오차이가 다른 음식이라는 것을 처음 안 듯한 표정이었다.

부부는 왕징에 거주한 지 16년이 넘었지만 한국 식당에서조차 ‘김치’라고 주문한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김치를 중국어로 번역한 말이 파오차이인 줄로만 알았지, 중국이 파오차이를 앞세워 김치까지 중국 음식이라고 우길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한국인 밀집 거주 지역인 왕징에 있는 한국음식점에서조차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부르니 중국이 김치를 너무 쉽게 본 것 같다는 반성도 했다. 중국이 김치까지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고도 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김치를 김치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에 수출 또는 생산 판매하는 식품은 모두 중국의 식품안전국가표준(GB)의 표기 방식과 생산 조건을 따라야 한다. 조건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사업 진출과 판매 유통이 금지된다. GB는 현재 한국 김치뿐만 아니라 독일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절임류 채소로 만든 식품을 모두 파오차이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파오차이 옆에 작은 글씨로 김치를 영문으로 병기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중국에서 김치를 김치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다.

앞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교민들의 작은 노력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 차원의 큰 움직임도 있어야 한다.

중국은 16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서울을 한청(漢城)이라고 불렀다. ‘서울’이라는 지명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조선시대 한성이라고 불렀던 명칭을 그대로 쓴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 사람들이 서울대에 보낸 우편물이 한국에서는 한성대로 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의 중국어 명칭은 2005년이 돼서야 ‘한청’ 대신 ‘서우얼(首爾)’로 바뀌었다. 당시 서울시가 중국어 이름을 바꾸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펼쳤었다. 서울을 한청에서 서우얼로 바꾼 것처럼 김치도 파오차이에서 김치로 바꿔야 한다. 이제 김치를 김치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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