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구본웅이 시인 이상을 그린 ‘친구의 초상’. 콧잔등과 왼쪽 뺨만 하얗게 처리해 화상을 입은 상처처럼 표현했다(왼쪽 사진). ‘문학사상’ 창간호(1972년) 표지(오른쪽 사진)에서는 왼쪽 뺨에 이른바 황달 현상이 보이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두 차례의 보존 처리를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되살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그림 하나가 있다. 바로 구본웅(1906∼1953)이 그린 ‘친구의 초상’(1935년경)이다. 화가는 친구인 시인 이상을 모델로 하여 초상화를 그렸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조는 암울한 시대를 반영한 것인가. 게다가 속도감 있는 거친 붓질은 시인의 내면세계를 짐작하게 한다. 모자를 쓰고 파이프를 문 모습. 얼굴 역시 어두운 그늘로 가득하다. 게다가 빨간색 입술은 초상을 더욱 괴기스럽게 한다. 정면상이기는 하나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있다. 삐딱한 시선. 직시하기에는 뭔가 불만이 많은 시대인가 보다. 이상 초상화의 특징은 왼쪽 뺨 부분이다. 이 부분만 강렬한 조명을 한 것처럼 하얗게 밝은 색이고 나머지는 모두 어두운 색이다. 특히 코 아래 턱 부분은 새까맣다. 무엇 때문에 콧잔등과 왼쪽 뺨만 하얗게 처리했을까. 마치 화상 입은 상처처럼 보인다. 하지만 화가의 의도가 시인의 내면세계를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마음의 화상이다. 커다란 상처다.
구본웅과 이상은 신명학교 입학 동기다. 어려서 사고로 척추를 다친 화가와 키다리 시인이 함께 길을 걸으면 동네 꼬마들이 곡마단 왔다고 뒤를 따라다녔다. 구본웅은 부친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을 이상의 편집으로 발행하게 했다. 이들은 잡지에 글과 그림을 함께 발표하면서 우정을 돈독하게 했다. 구본웅의 대표작은 ‘여인’(1930년)으로 나신의 여성 상반신을 그린 작품이다. 활달한 필치로 거칠게 표현한 인체 묘사는 구본웅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빨강과 파랑의 거침없는 구사, 특히 왼쪽 얼굴의 부분적 하양은 이상 초상화와 연결되는 화법이다. 그렇다면 우정의 징표 ‘친구의 초상’ 왼쪽 얼굴은 왜 하얗게 처리돼 마치 황달 걸린 것처럼 ‘상처’를 지니고 있을까.
시인 이상이 그린 자화상.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이 작품으로 조선미전에 입선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상과 구본웅. 이들 사이에는 한 여성이 있다. 바로 변동림이다. 변동림의 이복 언니가 바로 구본웅의 부친과 결혼한 사이다. 신여성 변동림은 자연스럽게 이상과 가까워졌다. 이상은 문제의 ‘오감도’ 같은 실험적인 시 연작과 소설 ‘날개’를 발표한 문단의 기린아였다. 변동림의 눈에 이상은 이랬다. “우뚝 솟은 코와 세 꺼풀진 크고 검은 눈이 이글거리듯 타오르고 유난히 건강한 청년”이었다. 그러니까 각혈하는 등 ‘폐인’은 아니었다. 이들은 방풍림이 있는 숲속을 거닐면서 사랑을 키웠다. 이들은 동소문 밖에서 밀월에 들어갔다가 1936년 6월 초순 신흥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이상은 신부를 서울에 두고 도일(渡日)했다. 이들의 밀월 생활은 3개월에 불과했다.
27세의 이상은 도쿄에서 요절했다. 데드마스크는 화가 길진섭이 석고로 떴다. 변동림은 1944년 5월 화가 김환기와 재혼했고, 이름을 김향안으로 바꾸었다. 오늘날 미술시장에서 최고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김환기의 뒤에 있는 ‘위대한 여성’ 김향안의 존재를 잊을 수 없다. 이상, 구본웅, 김향안, 김환기. 한 시대는 이렇게 흘러갔다. ‘상처’ 난 얼굴의 이상 초상화는 암울한 시대의 상징이다. 여기서 김광섭 시인의 시 구절이자 김환기 대표작의 제목이 떠오른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