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체납 2416명에 366억 징수
서울 강남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A 씨는 자신의 가상화폐를 압류한 세무당국 관계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세금을 27억 원이나 밀린 그는 가상화폐 39억 원어치를 숨겨둔 ‘큰손’이었다. A 씨는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3000만∼4000만 원을 오가던 2월경 당국으로부터 가상화폐 압류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가격이 급등세를 타자 가상화폐를 내놓지 않았다. 그 대신 친구들에게 현금을 빌려 밀린 세금을 다 냈다. 가상화폐가 앞으로 더 오를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가상화폐를 압류당한 고액 체납자 2416명 중 상당수가 소득과 재산을 압류당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트코인 등으로 바꿔 재산을 숨겨 온 것으로 파악했다고 15일 밝혔다. 체납자들은 부동산을 팔아 벌어들인 소득을 가상화폐로 바꿔 보유하거나 증여·상속받은 돈의 일부를 가상화폐에 투자해 당국의 압류 조치를 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 관계자는 “순수하게 투자 목적으로 가상화폐를 보유한 이도 있겠지만 기존 자산을 처분해 가상화폐로 바꾸거나 현금 소득을 가상화폐로 바꿔 은닉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C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17억 원에 대한 상속세를 내지 않고 상속 재산 중 5억 원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D 씨도 가족으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을 적게 신고해 26억 원의 체납 세금이 발생했는데도 이를 내지 않고 1억 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다가 적발됐다.
정부가 가상화폐를 체납 세금 압류 대상에 포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 대법원이 가상화폐를 몰수 대상인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재산’에 해당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약 1년에 걸쳐 가상화폐 거래소 계좌 정보와 시중은행의 계좌 정보를 비교해 고액 체납자를 추렸다.
문제는 초 단위로 변하는 가상화폐의 시세다. 가령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5000만 원이고 체납 세금이 1억 원이라면 비트코인 2개를 압류하면 되는데 비트코인 가격이 다음 날 4000만 원이 될 수도, 6000만 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압류통지서를 거래소에 접수한 시점의 거래 가격을 기준 가격으로 정해 추심할 방침이다. 가격이 오르면 가진 비트코인 중 일부를 팔아 세금을 내면 된다. 혹시 가격이 떨어지면 해당 금액만큼 다른 자산을 압류할 수도 있다.
한편 당국은 최근 비트코인 가격 급등세로 가상화폐로 자산을 은닉한 고액 체납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