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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Special Report:]쉼없는 기술 연구, 전철역-남극에 ‘청정 첨단’ 밭 일궈

입력 | 2021-03-17 03:00:00

스마트팜 선도 ‘팜에이트’, 설비 수입한 日에 역수출하기까지




팜에이트의 스마트팜에서 샐러드 채소인 버터헤드레터스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팜에이트 제공

국내 스마트팜(첨단 기술을 접목해 과학적으로 작물을 관리·재배하는 농장) 선도 업체 ‘팜에이트(Farm8)’는 2008년 웰빙 열풍과 함께 급성장하기 시작한 샐러드 채소 재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 원료 수급이 불가능할 정도로 농사를 망쳤다. 폭염과 집중 호우 때문이었다. 해가 거듭할수록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2010년, 실내에서 샐러드 채소를 수경 재배할 수 있는 스마트팜 설비 198m²(약 60평)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20년, 팜에이트는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일본 업체에 스마트팜 설비 7대를 오히려 역수출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중동 시장을 겨냥한 설비 입찰에서도 쟁쟁한 글로벌 업체들을 따돌릴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이 회사의 매출 중 설비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13%다. 나머지 87%는 샐러드 유통에서 나온다. 매일 재배한 채소 20∼30t을 샐러드로 가공해 CU, GS25 같은 편의점, 롯데마트,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 웰스토리, 아워홈 같은 급식업체까지 다양한 채널에 판매하고 있다. 쿠팡에서는 대기업을 제치고 샐러드 판매 1위를 달성했다. 초기 투자비용이 높은 스마트팜을 핵심 역량으로 소화한 팜에이트의 기술 상용화 전략을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월 1호(316호)에서 분석했다.

○ 재배 노하우를 통해 원가 절감

팜에이트는 서울 지하철 내 스마트팜인 ‘메트로팜’을 운영하고 있다. 팜에이트 제공

처음 스마트팜 설비를 들여온 뒤 팜에이트가 마주한 첫 번째 과제는 스마트팜에 적합한 작물 재배법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주로 키우는 작물 종류도 달랐고 설비를 판매한 업체마저도 재배법을 공유하기 꺼렸다. 하루아침에 로메인, 양상추 등 기르던 작물들이 일제히 죽어버린 적도 있었다. 광 시간, 전기전도도(EC) 등 확인해볼 수 있는 모든 요인을 점검했지만 이상이 없었다. 각종 논문을 뒤진 끝에 일본보다 한국 수돗물의 염소 농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루 동안 물을 받아 놓은 후 사용했더니 염소가 휘발돼 문제가 해결됐다.

팜에이트는 발광다이오드(LED) 광원, 이산화탄소, 배양액, 기류, 온도, 습도 등 10가지 환경 변수를 고려해 작물 재배법을 만들어 나갔다. 시행착오 끝에 현재는 샐러드 채소부터 식용화까지 100여 종의 작물을 한국형 스마트팜에서 기르는 재배법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양상추는 1년에 아홉 번까지 수확할 수 있게 됐고 포기당 중량도 10년 전 60g 수준에서 2배 높은 120g까지 늘었다. 재배 원가 역시 크게 개선됐고 이 덕분에 국내 스마트팜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낼 수 있게 됐다.

기술적으로 전문성을 확보하고 나니 재배 현장에 맞지 않는 비싼 설비 자재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태양광 패턴을 연구해보니 설비업체들이 사용하는 LED 조명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팜에이트는 재배 작물에 빛이 골고루 퍼지는 고효울 LED 조명과, 조명의 내구성을 50% 정도 향상시키는 냉각 기술을 개발했다. 작물을 심는 선반도 더 가성비 있는 소재로 교체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3000만 원 대이던 3.3m²당 설비 비용을 현재는 400만 원대 수준으로 절감했다. 일본 업체들에 비해 약 2.5배 더 저렴한 수준이다.

○ 지하철과 남극에도 스마트팜 공급

2020년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공급한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이 수송선에 실리는 모습. 팜에이트 제공

스마트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품 안전성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조성된 환경에서 재배되는 스마트팜 작물은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실내에서 물로 재배하기 때문에 농약도 쓰지 않고, 토지 및 대기오염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게 팜에이트 측의 설명이다.

팜에이트는 굵직한 공공사업에 참여하면서 스마트팜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2019년부터 서울시, 서울교통공사와 함께 수도권 지하철 내 유휴 공간을 개선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상도역, 을지로3가역, 충정로역 등 5개 역 안에 ‘메트로팜’을 지었다. 햇빛 하나 없는 지하에서 채소들이 분홍색 LED를 맞으며 자라는 모습을 직접 관찰할 수 있어 이목이 집중됐다. 또 ‘지속가능한 미래’를 주제로 영국 BBC에도 소개되기도 했다. 시민들이 직접 메트로팜에서 작물을 수확하고 맛보는 등 스마트팜을 체험하는 ‘팜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하루 네 차례 풀타임으로 진행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20년에는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컨테이너 형태의 스마트팜을 공급해 눈길을 끌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실내 농장에서는 상추 같은 엽채류만 재배할 수 있었는데 팜에이트를 통해 교체되는 실내농장에서는 고추, 토마토, 호박 등 과채류까지 기를 수 있다.

팜에이트는 스마트팜 설비 개발부터 샐러드 유통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사업 모델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는 팜에이트가 설비 시설을 공급한 농장에 재배법을 전수한 뒤 작물을 납품 받고 있다. 팜에이트로서는 기상 조건과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저렴한 값에 채소를 수급할 수 있고 협력사 입장에서도 든든한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다. 또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로봇 기술 등 고객사가 요구하는 설비 및 기술을 옵션으로 구성해 제공하고 추가 설비 비용이나 소프트웨어 사용료를 사용하는 비즈니스 모델도 구상하고 있다. 일본에 수출한 설비들에도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자동화 로봇을 탑재했다. 또 도심농업 확산을 목표로 가정용 미니 식물 재배기를 올해 중 출시할 계획이다.

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