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따르고 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하지만 김여정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남쪽에선 이미 누구나 알고 있다. 3년 전의 봄이 다시 오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코로나 방역을 내건 북한의 철저한 ‘셀프 봉쇄’가 언제 풀릴지 기약이 없다. 내년엔 곧 임기가 끝날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이 볼 일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과 장관 등 현 정부 각료들이 북한을 향해 ‘러브콜’을 시종일관 보내는 것은 할 말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 데다 내년 대선까지 관리하려면 현 정부가 내세우는 남북관계 치적을 북한이 군사적 도발로 물거품으로 만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뺨을 맞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이왕이면 웃어줘야 침이 날아올 확률이 줄어들 게 아닌가. 물론 북한도 이 정도는 당연히 알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김여정의 이번 담화는 봄을 만들 책임을 한국에 강요하는 듯 기고만장한 모양새다.
물론 한국도 추위가 좋을 일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는 겨울옷이 풍족하다.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로 체제를 감싸던 옷이 한 겹 두 겹 강제로 벗겨지고,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조금 축적했던 지방마저 연소돼 앙상해진 북한이야말로 추위를 어떻게 견딜지 참으로 걱정이다. 옷과 지방은 북한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고 있는 돈을 비유한 것이다.
중국 세관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대중(對中) 수출액은 3616만 달러(약 409억 원)에 그쳤고, 중국 외 다른 국가들과의 수출 총액도 806만 달러(약 91억 원)에 불과했다. 수출 총액이 500억 원 정도면 실제 번 돈은 훨씬 적을 것이다. 김정은이 최근 야심 차게 추진하던 주요 국책사업들도 돈이 없어 마무리 짓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돈 벌 길은 점점 좁아진다. 국제사회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무기 거래, 마약 판매 등 불법 행위로 버는 돈도 크게 줄었다. 그나마 지금 믿을 구석은 해외에 파견된 ‘외화벌이 전사’들의 활약이다.
현재 중국에 파견돼 활약 중인 것으로 파악되는 1000여 명의 ‘사이버 전사’들이 외주받은 일감과 해킹 등으로 국가 공식 무역에서 나오는 순수익보다 더 많은 2000만 달러(약 226억 원) 이상의 현금을 매년 버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숫자를 최소 300명으로 보고 1인당 계획 과제를 5만 달러씩 잡으면 1년에 1500만 달러, 최대 400명의 과제가 10만 달러씩이라고 가정하면 4000만 달러를 번다. 아마 실제 금액은 그 중간 어디쯤인 2000만∼3000만 달러 정도 될 것이다. 이들이 벌어서 바친 돈을 담은 현금 자루가 실제로 중국 단둥(丹東) 주재 북한영사관 전용 버스에 실려 주기적으로 압록강대교를 넘어간다.
하지만 각종 수입을 다 합쳐야 북한은 1년에 1억 달러 이상 벌기 어렵다. 체제를 지탱하기엔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게다가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외화벌이 전사들을 대다수 적발할 수 있다.
북한은 한국 통일부에 남북협력기금만 10억 달러 넘게 잠자고 있음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자존심 때문에 받지 않기엔 무시할 액수가 아니다. 현 정부도 북한이 써주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눈치다.
나아가 북한은 군사적 합의를 깨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 내년 대선에서 어느 세력에 유리할지도 잘 따져봐야 한다. 1997년 대선 직전 ‘총풍(銃風) 사건’으로 한국이 떠들썩했던 것이 그리 먼 옛날의 일은 아니다. 정말 김여정은 내년에도 강추위 속 ‘얼음공주’로 계속 남기를 원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