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충현 경제부 기자
홍 부총리는 그간 청와대와 여당을 상대로 자주 뜻을 굽혀 ‘백기’, 의지에 비해 결과가 초라하다는 뜻으로 ‘용두사미’에 빗댄 ‘홍두사미’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금이야 이 별명들이 익숙하지만 그는 부총리 취임 전까지만 해도 이와는 사뭇 다른 별명으로 불렸다.
홍 부총리와 함께 일한 관료들은 그를 ‘로봇’이라고 한다. 그의 강점인 성실함에 대한 일종의 찬사다. 새벽에 별 보며 출근해 밤에 별 보고 퇴근하는 일상으로 공직생활을 채웠다. 큰 일 작은 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실무에서 일할 때와 부총리가 된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다.
요즘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부총리에 오르기 전보다 훨씬 박하다. 홍 부총리는 재정 운영의 권한을 쥐고도 청와대와 여당의 요구에 번번이 나라 곳간의 열쇠를 내줬다. 대주주 양도소득세 요건 완화와 증권거래세 인하 등 민감한 이슈에서도 뜻을 접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갑자기 백기를 든 것도, 느닷없이 시작이 창대했으나 끝이 미약해진 것도 아니다. 원래 그렇게 일하던 사람이었고, 청와대가 그를 임명할 때 높이 평가한 면도 당청과 잘 조율해(혹은 잘 따라) ‘원 보이스’를 낼 적임자라는 점이었다. ‘홍백기’ ‘홍두사미’ 등의 별명은 ‘예스맨’ ‘바지사장’의 진화이자 변주인 셈이다. 그래서 관가에서는 홍 부총리가 앞으로도 간헐적으로 소극적 저항을 하겠지만 순응적 일처리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최장수 부총리의 타이틀은 거저 얻는 게 아니다. 책임도 따른다. 방만하게 지출된 재정에 대한 청구서는 반드시 날아온다. 그때가 되면 국민들은 돈 풀기에 앞장선 정치인들과 함께 홍 부총리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홍 부총리가 그때 “내 페이스북에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라고 저항하지 않았나”라고 면피하려 드는 모습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국민들은 열이면 열 ‘백기 드는 로봇’보다 필요하다면 말이 아닌 행동과 결과로 소신을 밀고 나갈 줄 아는 최장수 부총리를 원한다. 역사에 어떤 최장수 부총리로 기록되느냐는 홍 부총리에게 달려 있다.
송충현 경제부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