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법무 수사지휘권 파장]대검 부장회의에 고검장들도 참석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오른쪽 사진)이 18일 “한명숙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대검 부장회의를 열어 재심의하라”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를 받아들이면서 전국 고검장들도 회의에 참석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장관은 이날 오전 대구지검 상주지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부장회의에 고검장들을 포함시킬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며 대검의 입장을 수용했다. 뉴시스
“검찰 내 집단 지성을 대표하는 일선 고검장들을 대검찰청 부장검사 회의에 참여하도록 해 공정성을 제고하고 심의의 완숙도를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수사 검사 등의 모해(謀害)위증 지시 의혹에 대한 기소 여부를 대검 부장(검사장) 회의에서 다시 심의하라’며 발동한 수사지휘권에 대해 검찰총장 권한대행인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는 18일 이 같은 입장문을 밝혔다.
박 장관이 대검의 검사장급 간부들이 모이는 회의를 거명하면서 “대검 내에서 집단 지성을 발휘해 다시 한 번 판단해 달라는 의미”라고 하자 조 차장은 ‘검찰 내 집단 지성’인 일선 고검장들의 의견을 듣겠다며 맞선 것이다. 조 차장은 박 장관의 지휘를 수용하면서도 기소 지시에 부정적인 고검장들을 대검 부장회의에 참석시킴으로써 사실상 우회적으로 장관의 지시를 거부한 것이다.
○ 장관과 같은 지침 근거로 고검장 참석시켜
조 차장은 18일 오전 10시 17분경 약 800자 분량의 입장문을 통해 “대검에 근무하는 모든 부장검사들만의 회의로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부족하다는 검찰 내외부의 우려가 있고, 사안과 법리가 복잡하고 기록이 방대하다”며 6명의 고검장을 대검 부장회의에 참여시키겠다고 밝혔다.
조 차장은 고검장들을 참여시킨 근거로 대검 예규인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협의체 등 운영에 관한 지침’ 제5조 제2항을 근거로 들었다. 해당 조항에는 검찰총장이 사안에 따라 대검 부장회의에 고검장이나 일선 지검의 검사장들을 참여시킬 수 있다고 돼 있다. 법무부가 대검 부장회의를 열라고 지휘하며 “(대검 부장회의는) 장관이 보기에 현존하는 지침(예규)이 있는 의미가 있는 협의체”라고 한 만큼 같은 예규를 근거로 판을 흔든 것이다. 조 차장은 참모 등과 대응 방안을 협의한 뒤 법무부의 발표 후 약 18시간 만인 오전 10시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선 수사지휘권 발동 후 한때 사퇴설이 돌기도 한 조 차장이 자신마저 사퇴할 경우 여권의 외풍을 막을 사람이 사라져 검찰이 표류할 수 있는 등의 문제를 고려해 실리를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차장은 주변에 “지난해엔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수사 지휘하는 쪽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받는 입장”이라며 “만감이 교차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 고검장 6명 참석으로 기소 찬반의 과반 뒤바뀔 듯
대검은 박 장관이 수사지휘서에서 의견을 들으라고 적시한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을 기소 찬반 투표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장이 심의에 참여하더라도 불기소 처분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참석자 13명 가운데 수사 검사들을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은 대검 검사장급 간부는 한 부장검사를 포함해 이종근 형사부장, 이정현 공공수사부장, 신성식 반부패강력부장 등이다. 일부 고검장이 기소에 찬성하더라도 7명의 과반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검찰 내부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법무부 검찰국과 감찰관실 등에서도 관련 기록을 검토한 뒤 “기소가 어렵다”는 보고서를 낸 것으로 알려져 기소 의견 찬성표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황성호 hsh0330@donga.com·고도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