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배송’이 쏘아올린 ‘빨리빨리 경쟁’ 급속 확산 상품 미리 매입해두고 즉시 배송… 의류 오후 1시 전 결제땐 6시 도착 샤넬-구찌 등 해외명품도 당일 배송… “배송료 더 내더라도 상관 없다” 2030 젊은 소비자 이용률 높아
CJ올리브영의 ‘오늘드림’서비스(위 사진)와 현대리바트의 ‘내일배송’서비스. ‘오늘드림’은 주문 후 3시간 내에, ‘내일배송’은 주문 다음 날 지정된 시간에 화장품 가구 등을 배달하는 서비스다. CJ올리브영·현대리바트 제공
화창한 봄 날씨의 주말, 느지막이 잠에서 깬다. 오늘 저녁에는 모처럼 반가운 사람들과 모임이 있다. 그때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사실. ‘아, 마스카라 다 떨어졌는데….’
걱정할 것 없다. 휴대전화를 들고 앱을 켠 뒤 평소 쓰던 제품을 선택한다. 최종 결제 단계에서 일반 배송이 아닌 ‘오늘드림’을 선택한다. 그러면 3시간 이내에 마스카라가 배송된다. 집에서 편안히 쉬면서 여유 있게 외출 준비를 하면 된다.
신선식품을 넘어 화장품이나 의류에서도 오늘 주문하고 오늘 수령하는 ‘당일 배송’이 본격화되고 있다.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이 쏘아올린 ‘빠른 배송’ 경쟁이 확산되면서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유통기업은 물론이고 제조사들까지 소비자에게 직접 최단 시간에 배송해 주는 서비스를 늘리고 있다.
○ 뷰티·패션부터 가구까지 ‘당일 배송’ 경쟁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사업을 벌이던 CJ올리브영은 이커머스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2018년 12월부터 당일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CJ올리브영 관계자는 “지난해 오늘드림 주문 건수와 금액은 전년 대비 1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서비스 지역도 넓어지고 있다. 서울지역에서만 가능하던 오늘드림 서비스가 지난해부터 수도권과 6대 광역시, 제주도까지 확대됐다. 품목도 늘렸다. 서울 일부 대형 매장에서만 구매할 수 있었던 에스티로더, 맥, 바비브라운 등 7개 프리미엄 브랜드 대표 상품을 서울 전 지역에서 배송받을 수 있다.
패션업계에서도 당일 배송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나이키는 ‘나이키닷컴’ 회원을 대상으로 오후 1시 이전에 결제를 마치면 오후 6시까지 집으로 제품을 가져다주는 ‘오늘도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는 서울과 경기 성남시 일부 지역에서만 서비스가 제공되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다.
서울 동대문 의류도매상가를 기반으로 한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 브랜디는 지난해 10월 ‘하루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브랜디에 입점한 셀러의 상품 중 하루배송이 가능한 상품은 약 10만 건. 주문 상품 개수나 최소 금액 제한도 없다. 오전 8시 이전 주문 시 당일 오후 8시에 도착하는 ‘저녁 도착’, 오후 9시 이전 주문 시 다음 날 오전 7시에 도착하는 ‘새벽 도착’, 오후 2시 이전 주문 시 다음 날 중에 도착하는 ‘내일 도착’ 세 가지로 나뉜다. 서정민 브랜디 대표는 “정확한 수요 예측 기술을 기반으로 미리 판매가 예상되는 제품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배송 속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주문 후 일주일 넘게 기다리는 게 예사였던 가구 배송도 달라졌다. 현대리바트는 지난해 10월 소파 제품에 한정해 수도권에서 ‘내일 배송’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고 지난달부터 가정용 가구 모든 품목으로 확대했다. 이경훈 현대백화점 책임은 “통상 가구는 이사 등의 날짜에 맞춰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빠른 배송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내일 배송’ 비중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며 “현재 소파의 30%, 전체 품목의 10% 정도가 다음 날 배송 서비스 주문”이라고 말했다.
당일 배송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원래 온라인 서점이었다. 2006년 알라딘, 예스24 등 온라인 서점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당일 배송을 도입했다. 책은 규격화된 크기와 형태 덕분에 물류 관리가 쉽다. 미국 아마존도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해 글로벌 유통 공룡이 됐다. 올해는 교보문고도 물류업체 메쉬코리아와 손잡고 ‘바로드림 오늘배송’ 서비스를 내놨다.
○ 비싸도 ‘빠른 배송’ 선호하는 소비자들
당일 배송 경쟁이 불붙은 건 ‘쿠팡 효과’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일상용품이 떨어져 가면 미리미리 사뒀지만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 업체들이 주문 당일이나 다음 날 제품을 배송해주다 보니 제품을 다 쓴 뒤에 주문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이제는 필요한 즉시 제공되지 못하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힘들어졌다.
쿠팡의 ‘로켓배송’에서 촉발된 배송 경쟁은 이커머스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거래액 기준 국내 이커머스 1위 기업인 네이버(26조 원)는 ‘로켓배송’에 맞서기 위해 배송 속도를 ‘당일 도착’ 수준으로 더 앞당긴다. 당일 오전 주문한 상품을 바로 그날 받아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쿠팡이나 네이버 같은 거대 플랫폼이 당일·다음 날 배송에 뛰어들면서 배송 속도 높이기는 리테일 업계 전반의 과제가 되고 있다.
일부 빠른 배송에는 추가 비용이 붙는다. ‘오늘드림’ 서비스는 3만 원 미만 주문인 경우 소비자가 내는 배송비가 최대 5000원으로 일반 배송(2500원)의 두 배다. 나이키의 ‘오늘도착’ 서비스도 5000원의 배송비가 붙는다. 빠른 배송 이용자는 특히 20, 30대 비중이 높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빠른배송서비스 이용 현황과 발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당일 배송의 연령대별 이용률은 20대가 63.6%, 30대가 62.4%로 40대(49.4%), 50대(48.8%)보다 높았다. 보고서는 “당일 배송을 포함한 빠른 배송 요금이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이에 대한 불만은 낮은 편”이라며 “젊은 소비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속도의 배송을 위해서라면 요금 수준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