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스무 번/편혜영 지음/232쪽·1만3500원·문학동네
이 책은 저자의 여섯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각 작품에서 인물들은 모두 현재 머물던 공간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새로운 공간은 소도시나 시골이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장소에서 이들은 고립과 위협에 시달린다. 몰아치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쌓아가고 어느새 독자를 서늘한 진실의 공간으로 안내하는 ‘편혜영표 서스펜스’가 펼쳐진다.
단편 ‘호텔 창문’에선 죄 없는 죄의식을 그렸다. 주인공 ‘운오’는 물에 빠진 자신을 살리다가 목숨을 잃은 사촌형으로부터 19년째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사촌형의 기일을 맞아 찾아간 큰아버지 집에서 운오는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자책의 유혹에 이끌리는 인물들의 대화에서 작가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홀리데이 홈’ ‘플리즈 콜 미’ ‘후견’ 등 이어지는 단편들에서 작가는 한층 더 깊고 치밀해진 시선을 보여준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언제나 처음에 쓰려던 이야기와 조금 다른 자리이거나 전혀 다른 지점에서 멈춘다. 이제는 도약한 자리가 아니라 착지한 자리가 소설이 된다는 걸 알 것 같다”고 썼다. 작가조차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의 결말이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