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오리진/존 그리빈·메리 그리빈 지음·권루시안 옮김/352쪽·1만4000원·진선북스
각각의 시대에 생존해 있던 종(種)들은 그 시대까지의 환경에 적응한 최선의 결과를 보여준다. 문명 초기부터 인간은 생명의 이런 특징에 주목해 왔다. Unsplash 제공
그러나 이 책의 부부 저자가 전하는 사실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종의 기원’이 출간될 즈음 지식인들에게 진화는 이미 널리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다윈의 공로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사슬 속의 수많은 고리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진화 이론의 진화사(史)’가 이 책을 이루는 줄기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사상가 엠페도클레스는 ‘생명의 원초적 단계에선 기괴한 부위들이 조합을 이뤘지만 살아가기 적합한 형태만 살아남아 번식했다’고 생각했다. 이보다 전인 기원전 6세기의 아낙시만드로스는 ‘바다에서 물고기가 먼저 등장했고, 인간은 이 물고기 상태에서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찰스 다윈
책 후반부엔 유전자를 이루는 RNA(리보핵산)와 DNA(디옥시리보핵산)에 이름을 붙인 레빈, 이것들의 구조를 밝힌 왓슨과 크릭을 비롯한 20세기 유전학 대가들의 활약을 소개한다. 책 전체에 걸쳐 150명이 넘는 과학자와 사상가의 이름이 등장한다.
최재천 교수(다윈포럼 대표)의 추천사 말마따나 ‘겨울밤 모닥불 곁에 모여 앉아 듣는 듯한 조곤조곤 진화 이야기’라 할 만하다. 진화 전쟁의 장(場)인 여러 지질시대의 지식도 방대한 차원으로 펼쳐진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들은 진화와 유전학의 이야기는 지금도 적혀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유전자의 활동을 제어하는 세포 메커니즘은 이제야 밝혀지기 시작한 상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