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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왜 가장 가까운 남자에게 맞아야 하나

입력 | 2021-03-20 03:00:00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성원 옮김/488쪽·1만9800원·시공사




‘집은 여자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2017년 한 해 동안 살해당한 여성 중 58%가 친밀한 파트너 혹은 가족에게 당했다는 조사 결과를 2018년 발표하면서 이같이 언급했다. 미국에서는 매달 50명의 여성이 반려자가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따져도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97명으로 파악된다. 문학 교수이자 가정폭력 연구자인 저자는 여성 피해 사건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가정폭력 문제를 정면에서 분석한다. 피해자와 유족, 가해자, 경찰, 검사 등을 심층 취재해 가정폭력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을 내놓는다.

저자는 먼저 “피해자는 왜 가해자를 떠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그 사례 중 하나는 남편 로키에 의해 집에서 총 네 발을 맞고 사망한 미셸의 이야기. 로키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셸은 아이들을 어머니 집으로 보내고 접근금지명령 신청까지 했지만 사법기관 간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결국 숨지게 된 안타까운 과정을 낱낱이 기록했다.

논쟁적인 부분은 가정폭력 가해자를 취재한 2부다. 가정폭력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저자는 1994년 미국에서 여성폭력방지법이 제정되며 가해자와 함께 가정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학대자 개입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한 것에 발을 맞췄다. 이를 통해 이들이 감옥에서 나왔을 때 폭력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