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헌기 전 대표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베트남 참전 용사인 그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했지만 근육운동으로 이겨내고 70세를 넘어서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홍헌기 전 대표 제공.
“제가 49세 때인 1999년이었습니다. 병원에서 3,4개월 밖에 못 살 것 같다고 했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던 때 어느 헬스클럽을 지다다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하고 부딪혀 넘어졌습니다. 제가 걸음도 제대로 못 걸어 비실비실 걷다 힘 좋은 사람하고 부딪혀 넘어진 거죠. 나이가 지긋한 분이었는데 운동을 해서인지 건강하시더라고요. 저를 일으켜 세워주며 ‘운동 한번 해보라. 운동하면 몸이 달라 질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바로 헬스클럽으로 달려갔습니다.”
홍 전 대표는 1972년 마지막으로 베트남에 파견됐다. 백마부대 28연대 도깨비부대 이등병으로 배에 올랐다. 1975년 전쟁이 끝난 뒤 돌아와 처음엔 괜찮았는데 서른 중반부터 고엽제 후유증이 나타났다. 그는 “흰 가루가 농약인 줄 알았으면 안 먹었을 텐데 목이 마르니 수통으로 물을 담아 마셨던 게 화근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뇌에 악성 종양이 생겼고 폐로까지 전이가 됐다. 그는 “당시 함께 베트남에 갔다 온 동료들이 다 죽었다. 그 때까지 10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베트남 갔다 와서 결혼을 안했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도 많이 했다. 딸 셋인데 어떻게 할지 막막했다”고 했다.
그곳에서 창용찬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 원장(66)을 만났다. 1999년 10월이었다. 창 원장은 당시 대한보디빌딩협회 이사로 코치아카데미 운영을 맡고 있었다. 창 원장은 “몸은 허약했는데 운동에 대한 투지가 남달랐다”고 기억했다.
“운동을 하다보니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장이 다 망가져 소화력이 떨어졌지만 닭 가슴살을 갈아서 7~8번 나눠 먹으면서 운동했습니다. 다른 보디빌더들은 하루 닭 가슴살을 4~5개씩을 먹는데 전 소화를 시킬 수 없어 하루 1개만 먹었어요. 그리고 하루 몇 시간씩 운동했습니다. 토하기도 했고 쓰러지기도 했지만 근육이 붙는 재미에 힘든 줄 몰랐습니다.”
홍헌기 전 대표가 전성기 시절 대회에 출전해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 홍헌기 전 대표 제공.
“근육 운동을 한 지 2년이 지난 뒤 병원에 갔더니 뇌와 폐에 있던 종양이 말끔하게 사라졌어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은 뇌와 폐에 깍두기 크기 정도의 흉터만 남아 있습니다.”
홍헌기 전 대표가 각종 대회에 출전해 획득한 트로피들. 홍헌기 전 대표 제공.
홍 전 대표는 제대로 운동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공부도 했다. 호주 시드니 국립 맥퀄리 의과대학에서 척추학, 중국 베이징대 의과대학에서 인체해부학, 고려대 척추클리닉 등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일반인을 위한 클리닉이 개설 됐을 때 공부한 것이다. 2011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BND 대학에서 자연치유학을 공부하고 왔다. 망가진 내장 때문에 소화가 안 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식에 대해 공부한 것이다.
대한보디빌딩협회 인사 법제 상벌부 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홍 전 대표는 10여 년 전부터는 대회 출전을 자제하고 있다. 2017년 보건복지부장관배 코리아보디빌딩 대회 그랑프리 대상을 받은 게 마지막이다.
홍 전 대표는 요즘도 매주 3~4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 간헐적 단식 차원에서 아침을 거르고 오전 9시부터 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공복에 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론 그래야 더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여전히 지금도 음식 섭취를 양껏 하지는 못한다.
홍헌기 전 대표가 운동하다 포즈를 취했다. 그는 베트남 참전 용사로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했지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이겨내고 70세를 넘어서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홍헌기 전 대표 제공.
“10여 년 전에는 중국에서 올림픽이 예정돼 있었고 대회도 홍콩에서 열리는 바람에 중국계에 밀린 측면이 있습니다. 제가 70세를 넘겼지만 열심히 몸 관리해 지금도 50대에 꿇리지는 않습니다. 1년 열심히 몸 만들면 경쟁력이 생길 겁니다. 75세 이전에 아시아대회에 출전해 꼭 금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홍 전 대표는 살기 위해 시작한 웨이트트레이닝이지만 이젠 그에게 삶의 목표이자 즐거움이 됐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