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우리 집은 청운동 인왕산 아래에 있는데 산골 물 흐르는 소리와 산기슭을 훑으며 오르내리는 바람 소리가 좋은 터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38년 동안 살았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자랑했다고 한다. 그룹을 이끄는 중에 잠시나마 여유를 주는 집에 대한 애정이 컸다.
현대차그룹 제공
21일 현대자동차그룹은 정 명예회장 20주기를 맞이해 제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포함해 청운동 자택 내부와 외부 사진을 공개했다. 청운동 자택 사진은 20년 간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사진 뉴시스
정 명예회장의 삶이 곳곳에 묻어 있는 청운동 자택은 1962년 7월 건물면적 약 317㎡(96평)으로 지어진 2층짜리 집이다. 그룹 창업주의 집이었지만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으리으리하지 않고 평온하면서 잔잔한 느낌을 주는 집이다. 나무와 숲, 바위로 둘러싸여 있어서 계절 별 아름다움도 만끽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실과 응접실로 사용되는 1층엔 오래돼 보이는 피아노와 회색 소파, 책장 등이 놓여 있었다. 거실 벽 한 쪽엔 정 명예회장과 부인 변중석 여사의 영정이 나란히 걸려 있었고, 소박하게 차려진 제사상 뒤쪽으로는 정 명예회장의 어머니인 한성실 여사의 영정도 놓여 있었다.
사진 뉴시스
자택 마당에서 바라본 바위에는 ‘인왕산의 양지쪽으로 볕이 잘 들고, 신선이 살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의미의 ‘양산동천(陽山洞天)’과 남거 장호진(조선시대 남양군수·1856~1929)이 유거하는 집이라는 뜻의 ‘남거유거(南渠幽居)’가 새겨져 있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을 이끌면서 말 못할 고뇌와 못 다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을 텐데, 집안 곳곳에 놓인 글귀 등에서 그의 마음이 읽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은 생전에 매일 오전 5시면 자식들을 청운동 집으로 불렀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을 함께 먹는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정 창업주는 “나는 젊었을 적부터 새벽 일찍 일어난다.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라며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현재 청운동 자택은 2000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을 거처 2019년 손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물려받았다. 현대가는 이 곳에서 정 창업주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부인 변중석 여사의 기일은 8월 17일이지만 지난해부터는 제사를 합쳐서 지내고 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