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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국민의힘, 울타리 부수고 윤석열·안철수에게 가라

입력 | 2021-03-22 03:00:00

文도 ‘부동산 남 탓’ 20시간 만에 사과
국힘, 알량한 당 울타리가 벼슬인가
당외 주자에 ‘입당하려면 꿇어!’ 강요
터줏대감 행세 김종인, 마음 비우고 尹·安이 안 오면 국힘이 먼저 가라




박제균 논설주간

20시간. 대통령의 부동산 ‘남 탓’이 사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오후 2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건에 대해 ‘부동산 적폐(보수정권 탓)’ ‘부동산 정쟁(야당 탓)’ 타령을 했다. 그런데 16일 오전 10시 국무회의에서는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라고 말이 달라졌다.

대통령의 워딩, 특히 ‘불통 직진’의 문 대통령 말이 하루도 안 돼 바뀐 건 참으로 드문 일이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내 탓이오’와는 거리가 먼 쪽이다. LH 사건으로 국민적 울화 지수가 치솟는 가운데도 자신이 은퇴 후 살 집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분을 못 참고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그 정도 하시지요”라는 직정(直情)의 언어를 페이스북에 쏟아냈다.

청와대라는 공식 창구가 있는 최고권력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직접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게다가 국익이나 국민적 감정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집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말 그대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문 대통령은 진정성 있는 사과, 아니 그냥 사과와도 거리가 먼 편이다. 뜬금없이 보수정권 때 일을 사과하며 사실상 ‘네 탓’을 하거나 윤석열 징계 파동 때처럼 ‘인사권자로서 사과’ 같은 유체이탈 사과를 하곤 했다. 자신이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재·보궐선거 원인 제공 정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을 당헌에 넣었으면 민주당의 서울·부산 보선 후보 공천에 사과, 아니면 유감 표명이라도 했어야 마땅하다.

그렇게 사과에 인색한 대통령이 이번에는 ‘큰 심려를 끼쳤다’며 비교적 강도 높게 사과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처럼 하룻밤 새 ‘신내림’을 받았을 리도 없고…. 20시간 만에 돌변한 대통령의 이례적인 사과는 선거가 20여 일 앞으로 임박했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페이스북 글과 ‘부동산 남 탓’의 연타(連打)가 불 지른 민심의 분노가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누군가 귀띔했을 것이다.

그렇다. 문 정권 사람들은 국정(國政)은 하릴없이 무능해도 선거엔 목숨을 건다. 일국의 대통령이 하룻밤 새 말을 확 바꾸는 게 남사스러울 법도 하건만,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개의치 않는다. 그러니 몇 번이나 죽었던 가덕도 공항을 살려내도, 선거 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가슴 뛴다”며 ‘애프터서비스’를 해도, 국고로 현금을 뿌리는 신종 관권·금권선거도 모자라 이번에는 ‘디지털 화폐’라는 신규 아이템까지 들고나와도 거리낌도 수치심도 없다.

그런데 이런 ‘선거 귀신’들에게 맞서야 할 제1야당은 어떤가. 문 정부의 실정(失政)과 LH 사태의 반사이익으로 자당 후보의 지지율 좀 올랐다고 특유의 웰빙 기득권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당의 울타리가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나. 윤석열이나 안철수 같은 당외(黨外) 주자들에게 ‘입당하려면 꿇어!’를 사실상 강요하려 한다. 참 못났다.

기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많은 중도·보수 유권자들에게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가 오세훈이냐, 안철수냐는 큰 의미가 없다. 누가 되든 야권이 하나로 뭉쳐 내년 대선의 전초전 격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선전한 뒤 메인 게임인 대선에서 ‘한 번도 경험 못 한 폭정’을 끝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공정과 정의, 법치와 상식의 복원을 통해 비정상 대한민국을 정상화하고, 과거에 처박힌 국가 담론을 미래로 옮겨주길 염원하는 것이다.

1년도 남지 않은 시간, 국민의힘이 지난 4번의 큰 선거에서 연패했을 때처럼 정파의 소리(小利)에 매달려 분열로 치닫는다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무엇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부터 달라져야 한다. 비대위원장이라는 직함에 걸맞게 비상시가 지나면 물러난다는 각오로 마음을 비우길 바란다. 힘을 합쳐야 할 후보에게 사감(私感)을 드러내고 당의 터줏대감처럼 행세하고 있으니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국민의힘은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하면 어차피 해체될 수밖에 없다. 그땐 울타리고 뭐고 없다. 그 알량한 울타리를 부수고 광야로 나가 야성(野性)을 보여라. 윤석열 안철수가 국민의힘으로 오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이 윤석열 안철수에게 가라. 정말로 ‘국민의짐’이 되고 싶지 않다면.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