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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업계 “복수의결권 허용법 국회 통과 서둘러 달라”

입력 | 2021-03-23 03:00:00

“창업자의 안정적 경영권에 도움… 유니콘기업 성장의 도화선 될 것”
국회 심의 중… 내달 13일 공청회
주주권리 침해-세습수단 우려도




쿠팡의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 이후 복수의결권 도입에 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국내 벤처업계가 복수의결권 허용 법안을 서둘러 처리해 달라고 국회에 요구하고 나섰다.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벤처업계는 “혁신 기업을 국내 증시에 상장시키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복수의결권 제도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 장기 성장기반 다질 수 있는 수단
혁신벤처단체 협의회는 22일 복수의결권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자에게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창업자가 안정적인 경영권을 기반으로 대규모 투자를 받아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복수의결권은 1주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해 대규모 투자 유치 이후에도 창업자가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경영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구글이 2004년 기업공개 당시 도입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2014년 중국의 알리바바가 복수의결권 제도를 허용하지 않는 홍콩 증권거래소를 포기하고 뉴욕 증권거래소로 옮겨 상장하며 관련 논의가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도 활발해졌다.

최근 국내에서는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이 관련 논의를 촉발시켰다. 쿠팡이 미국행을 추진한 배경에 대해 창업자 김범석 의장은 “(복수의결권 행사가)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주당 29개의 의결권을 인정받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2%의 지분으로도 58%의 의결권을 가져 경영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복수의결권은 창업자가 단기 주가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 성장전략을 추구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복수의결권은 이미 성장한 유니콘 기업이 상장할 때 필요한 것이다. 비상장 기업의 ‘성장’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쿠팡 따라 해외로 눈 돌리는 혁신 기업들
벤처업계에서는 쿠팡 같은 국내 스타트업 기업이 대규모 ‘엑시트(자금 회수)’를 성공시키며 ‘창업, 투자, 회수’의 선순환을 만들기 시작한 만큼 복수의결권 제도화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로선 투자를 받을수록 경영권이 위협받는다. 2019년 연매출이 250억 원 규모인 A사는 약 15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지만 창업주 지분은 99%에서 48%로 줄었다. 협의회 측은 “복수의결권이 없는 국내 증시에 상장하면 지분이 희석돼 추가 자금 조달은 엄두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마켓컬리 등이 쿠팡에 이어 해외 상장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법과 한국거래소 상장규정 모두 복수의결권을 허용하지 않지만 중국 인도를 비롯해 런던 뉴욕 나스닥 등 세계 5대 증권거래소는 혁신기업 상장을 유도하기 위해 모두 이 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도입을 검토 중인 방식은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1주당 2개 이상 최대 10개까지의 의결권을 허용하는 방안이다. 대규모 투자로 창업주 보유 지분이 30%를 밑도는 경우 최대 10년까지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3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보통주로 전환하는 내용도 담았다. 하지만 벤처 투자 위축, 주주권리 침해와 재벌 세습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도입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국회는 다음 달 13일 공청회를 열고 벤처업계 안팎의 목소리를 수렴해 세부 수립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박성진 psjin@donga.com·김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