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영 문학평론가
토니 모리슨의 ‘재즈’(최인자 옮김, 문학동네, 2015년)는 1926년 미국 북부 볼티모어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치정 사건에서 시작된다. 남편이 자신 몰래 밀애를 나누었던 열여덟 살 소녀 도카스에게 배신당하고 그녀를 살해하자 50대 흑인 여성 바이올렛은 장례식장에 칼을 들고 가서 난동을 피운다. 그리고 온종일 도카스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관 속에 누워 있던 그녀의 머리카락을 떠올린다. “딱 4분의 1인치만 잘라냈어도 정말 아름다웠을 것이다. 도카스. 도카스.”
소설은 바이올렛을 이상한 집착과 광기에 휩싸이게 한 1920년대 미국 도시의 풍경을 즉흥적인 리듬으로 그려낸다. 더 이상 노예가 아닌 흑인들의 자유로운 감정은 도시에서 통제되지 않고 무질서하게 흘러간다. “날 때려요, 떠나지만 마요”라는 절절한 가사, 사랑을 돌려받지 못한 여자들의 모욕과 갈망, 백인들이 자행하는 폭력과 분노가 한데 뒤섞여 있는 공간. 입 다물거나 미쳤거나 죽지 않은 흑인 여자들은 모두 꽁꽁 무장하고 있는 곳.
이 모든 것은 음악 때문이었을까. 소설의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는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리슨은 노예 해방 이후 도시로 몰려든 흑인들의 삶을 재즈의 음악적 형식에 비유했다. 재즈의 즉흥성과 자유로움은 거듭 출몰하는 과거로부터 발목 잡히지 않게 만들어준다고, 선택의 여지없이 똑같이 반복되는 역사를 거부하게 만든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재즈는 미래를 요구했다.” 이 소설은 그 요구에 기꺼이 동참한다. 그리고 그런 미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믿게 만든다.
인아영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