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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은별이가 로나를 트로피로 때려 죽였어.”
대전에서 세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최모 씨(43)는 며칠 전 여섯 살 딸이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19세 이상 시청가’로 방송된 한 TV 드라마 속 내용이었다. 집에선 해당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초등학생 오빠들과 유튜브에 있는 드라마 편집본을 봤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 준 게 화근이 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아이들의 TV와 컴퓨터, 스마트폰 이용시간이 늘었다. 이 과정에서 성인 대상의 영상물을 거리낌 없이 보는 아이들 탓에 부모들의 걱정이 많다. 실제 지난해 초등학생 10명 중 3명 이상이 성인용 영상물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학생들이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을 통해 접하는 콘텐츠의 수위도 문제다. 최근 시작된 한 TV 드라마는 ‘15세 이상 시청가’ 방송이지만 학교폭력, 살인 등 자극적인 내용을 방송해 논란이 됐다. 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늘어나면서 잔인한 장면이 들어간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가 이전보다 더 쉽게 어린이들에게 노출되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박모 씨(42·경기 성남시 분당구)는 “아이가 칼로 사람을 베는 장면이 그대로 나오는 일본 만화를 보고 있었다”며 “키즈계정을 설정한 것도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 5학년 자녀를 키우는 배모 씨(42)는 “아이가 유튜브 게임 방송을 보더니 ‘X좋아, XX싫어’ 같은 비속어를 사용한다”며 “스마트폰 자녀보호 기능을 쓰긴 하지만 노트북을 쓸 때는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아동 성교육 전문가인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무조건 아이를 통제하기보다는 텔레그램 등 모바일 앱의 위험성을 자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안전 수칙’을 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온라인 성폭력 피해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청소년 성폭력은 절반에 가까운 44.7%가 온라인에서 발생했다. 반면 학교 내 성폭력은 2016년 63.6%에서 지난해 32.5%로 크게 줄었다.
이소정기자 so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