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나 13세 때 입산 출가했으며 1948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범어사, 해인사, 직지사, 청암사 선원 등에서 화두를 붙잡고 정진하면서도 경전과 율장을 놓지 않았다. 1972년 서울 조계사 주지를 맡아 처음으로 불교합창단을 창설하는 등 불교대중화에 앞장섰고, 1975년 폐사에 가깝던 쌍계사 주지를 맡아 불사를 통해 교구 본사로서의 사격(寺格)을 갖췄다. 부산 혜원정사, 부천 석왕사를 창건해 도심포교의 토대를 닦았다.
스님은 엄격한 수행자이면서도 거칠 것 없는 열린 마음의 스승이었다. 별명 중 ‘땡비’(땅벌)도 있다고 하자 스님은 “땅에 집을 짓고 살다 무섭게 쏘아대는…. 조금이라도 생각이 비뚤어져 있으면 인정사정없이 귀싸대기 붙인다고 해서…. 내 성질이 좀 별나서…”라며 껄걸 웃었다.
1998년 제29대 총무원장에 선출됐지만 ‘천하의 총무원장’ 자리를 박차고 낙향한 일화는 유명하다.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젊은 사람(지선 스님)과 선거를 두 번이나 할 수 없다”며 물러나 본격적으로 후학 지도에 힘썼다.
“한 구덩이에서 호박 한 줄기에 다섯 개씩, 다섯 줄기면 5 곱하기 5 해서 25개, 이걸 다시 열 차례 따 먹으면 한 해가 가요. 사람들이 이 재미를 잘 몰라요. 허허허.”
쌍계사에 따르면 스님은 ‘봄이 오니 만물은 살아 약동하는데 가을이 오면 거두어 들여 다음 시기를 기다리네. 나의 일생은 허깨비 일과 같아서 오늘 아침에 거두어들여 옛 고향으로 돌아가도다’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효(孝)상좌로 잘 알려진 쌍계사 주지 영담 스님은 “언젠가 입적하실 것으로 생각했지만 너무 갑작스럽다”며 “한시도 수행과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라던 은사의 가르침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장례는 종단장으로 치러지며 분향소는 24일 오전 10시부터 쌍계사 팔영루에 설치된다. 영결식은 27일 오전 10시 경내 도원암 앞에서 봉행된다. 055-883-1901
김갑식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